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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

지나간 이야기들은

Gazamee 2019. 8. 5. 14:38

글로 정리하지 않으면 빠르게 휘발된다. 가장 우울할 때에만 찾는 공간을 따로 만들어 놓았기에 더욱 그렇다. 어떤 표현과 무슨 사건이 어떻게 이어졌는지를 잊어버리는 것은 순식간이다. 그나마 그 때의 감정이 희미하게 남는 것만이라도 다행일지 모른다. 대개는 아주, 아주 부정적인 감정들만이 여운을 남기지만.

 

가족들과 함께 지내면서 물질적 생활은 무척 편안하고 풍족해졌다. 그 대가로 내 모든 것들은 생산성 없는 의심에 잠식된다. 내 정신병이 가짜라면? 그냥 내가 더럽게 게으를 뿐이라면? 그리고 그 비슷한, 자기파괴적 질문들의 나열. 속이 메슥거리고 머리가 아파오지만 이것마저도 엄살인 것은 아닐까.

 

정신과에 다니는 것은 용인받았지만, 대신 정신과에 다니기만 한다면 내 생활은 '정상적'으로 굴러가야만 한다고, 그렇게 압박당하는 느낌이 든다. 약물과 상담은 정말 많은 것을 나아지게 하지만, 종종 내 정신건강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되는 것은 가족이다. 내가 하는 말들이 대체 얼마나 그들을 설득할 수 있을까. 의사에게 울며 매달려, 제발 저들을 권위 있는 말로 다스려 달라고 할 수 있는 시기는 지났을 것이다(지났기를 바란다).

 

 

글을 잘 쓰는 아이였던 시절이 있었다. 내가 창조한 세계를 사람들 앞에 선보일 미래가 있을 거라고 오래도록 믿었다. 내 자그마한 우주들은 언제나 새롭곤 했다. 그것이 모두 자전적인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데에는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때 이미 나는 허황된 꿈을 놓아버린 뒤였다. 무언가를 잡고 있기에는 내가 너무나도 무기력했다. 그리고 여전히, 나는 타인이 보기에 '한참 지나간 다툼'에 대하여 힘없이 질질 끄는 글을 남긴다.

 

내가 나 이상의 무언가가 될 수 있을까. 그럴 필요가 있을까. 그렇지 않더라도 혹시나 될 수는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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