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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봤을때 엄마는 지금, 썩 가볍지 않은 우울증 환자이다. 나는 엄마가 병원에 갔으면 좋겠지만 엄마는 아침에 절인지 점집인지를 가서 아직도 돌아오지 않는다.
엊그제는 주말이라서 제대로 씻지 않고 누워 잤다. 원래 어제는 일정이 있어서 나가보아야 했지만 몸이 너무 처져서 도저히 무리였다. 새벽 2시 반부터 낮 12시 반까지를 꼬박 잤고, 일어나서 점심 먹고 아 나가기 전에 조금만 더 자야지 하면서 2시쯤 잠들었다가 도저히 깨질 못하는 상태로 6시 정도까지 비몽사몽하며 아무튼 잤다. (원래 일정은 4시) 어쩐지 아주 화가 난 아빠가 깨워서 저녁을 먹는둥 마는둥 했고, 7시쯤 되니 엄마가 한 소리를 하러 왔다. 그리고 그 내용은 솔직히, 가관이었다. "네가 퍼질러 자느라 씻지도 않는 꼴 때문에 짜증이 나서 죽겠다"는 것이었다.
10대 때부터 나는 종종 하루 온종일 잠을 자야 하는 경우가 있었다. 수면검사를 받아본 적이 없어서 이에 대해 뭐라고 분석할 수는 없고, 그냥 그랬다. 엄마도 이를 알고 있을 터다. 요즘의 나는 잠을 컨트롤하려고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지만, 아무래도 평일 일과시간 중 할 일이 아무것도 없으면 잠이 와서 조금씩 자게 된다. 이것만으로도 엄마는 꽤나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일이 없는 시간에 쪽잠을 자는 게 그렇게까지 잘못인지 나는 잘 모르겠다.) 그런데 내가 주말동안 제대로 씻지도 않고 잠만 잤으니 (아니 잠을 자면서 어떻게 씻어요) 복장이 터진다는 것이다. 그렇게 엄마의 싫은소리를 한차례 듣고도 나는 너무 졸려서, 샤워를 한 뒤 다시 잠을 청했다. 보일러를 끄러 갈 때 엄마는 무슨 일이 있냐고 물었지만 나는 힘없으면서도 좀 짜증스럽게 없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8시쯤 잠이 들어, 자정 무렵에 깼다가 1시에 다시 잠들어서 8시 반에 일어났다. 정말 어마어마한 시간을 잠으로 보낸 것이다.
솔직히 나는 내가 이유도 없이 피곤해서 하루를 잠으로 보내는 것 자체에 대해서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갑작스런 피로는 내 질환의 일부일 수 있고, 그것이 꼭 남들이 보기에 아주 명시적인 원인이 있어야만 일어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타인, 특히 부모님에게 이를 이해받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고 느낀다. 내가 자살소동을 일으키기 전까지만 해도 계속 언제까지 병원에 다니며 약을 먹어야 하냐, 언제쯤 낫느냐 물어보기도 했고, 지금도 내 의ㅡ지와 노ㅡ력이 부족하다는 말을 끊임없이 한다. 물론 그건 어느정도 사실이라고 생각하지만, 나는 종종 나에 대한 책망이 과하다고 느낀다.
그래서 내가 많이 상처를 받느냐 하면... 사실 그건 아니다. 솔직히 말해서 그런 말들은 반쯤 흘려듣는다. 그러지 않으면 나는 나를 지키기가 무척 어렵고, 내가 "잘못"하지 않은 것까지 나의 탓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나는 나를 과도하게 책망하는 삶을 너무나 오래 살아왔고 그것은 매우 자기파괴적이었다. 이제 나는 그러고 싶지 않고, 그래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는 단순히 숨만 붙이고 사는 것 이상의 무언가를 영위하기 위해 매우 중요한 생각이다.
다만 어쩔 도리 없이 화가 나는 건 엄마의 대응이다. 내가 "꼴사납게 씻지도 않고 주말동안 잠만 잤다"는 이유로 엄마는 복장이 터지고, 어쩌다 저런 애가 내 새끼가 되었나 억울하고, 팔자를 원망했다. (아니 상식적으로 애가 이렇게 된 것에는 부모의 영향이 꽤 크지 않을지?) 물론 그건 아마도 결정타였을 뿐이고, 계속 내 꼴이나 다른 가족들의 행동에 대한 불만, 그리고 워커홀릭인 엄마가 퇴직하고 나서 아직 아무것도 시작하지 못했다는 불안감이 언제나 마음 속에서 끈적하게 뒤섞이며 폭발할 순간들을 찾고 있었을 것이다. 뭐 사실 이번이 처음 폭발한 것도 아니고 내가 고향집에 내려온 이후만으로도 벌써 몇 번은 있었던 일이지만, 이번에는 그 방향이 나를 향했을 뿐이기도 하다. 뭐 솔직히, 엄마가 다른 가족구성원에게 화를 낼 때는 이렇게까지 짜증나진 않다가 이번에 유독 신경이 거슬리는 것도 이것 때문이긴 하다만.
내가 만났던 상담사나 의사들은 "진짜 치료가 필요한 사람은 오지 않고, 그들이 치료받으러 오는 환자들을 만든다"라고 말하곤 했다. 그리고 나는 거기에 제법 공감해왔다. 사실 나는 엄마가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해왔다. 물론 지금은 나 또한 엄마에게 상당한 악영향을 끼치고 있을 수 있다고 보지만(긴밀한 관계에 있는 정병러는, 자신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결국은 주변 사람들의 정서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이 불행한 사실이다), 나는 최소한 매주 상담을 받고 약물치료를 병행하면서 꾸준히 노력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엄마는 딸이 안 씻고 잠만 잔다는 이유로 멘탈이 터졌고, 그걸 달래기 위해서 치료를 받는 대신 종교에 의탁했다. 그것이 어느정도 마음에 안정을 줄 수는 있을지 몰라도, 제대로 된 치료가 될 수는 없다. 나는 그래서 꽤나 화가 났고, 어제오늘 내내 그에 대해서 이야기하다못해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
그리고 내 감정이 여기까지 왔다는 것은, 다행히도, 이제 여기서 더이상 그 문제에 얽매이지 않겠다고 스스로 마음을 먹었다는 것이다. 긴 글로 써 보니 그저 엉망진창인 상황과 그에 따른 불만은 이쯤 하고 접어두는 게 맞다. 엄청 방어적으로 썼지만 결국 내가 안 씻고 늘어져 잔 것이 현실이라는 점에서 잘한 건 없기도 하고. 엄마가 뭐 점집에 가산을 탕진하지만 않는다면야... 내가 뭐라고 하겠어... 엄마 병원좀 가세요 엄마 그거 정병이에요 했다가 뺨맞느니 그냥 가만 있자... 뭐 이런 결론이다. 오늘도 참 실없는 글을 길게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