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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

20200506

Gazamee 2020. 5. 6. 13:37

별 생각 없이 들어간 구글닥스에 '요즘 글이 뜸해서 안부가 궁금하다'는 말이 남아있어 짤막하게 근황을 남겨 보려고 합니다.

 

집에서의 생활은 편안한 몸과 고달픈 정신 사이에서 갈등하는 나날입니다. 가사노동의 대부분이 제 노력과 무관하게 이루어지고, 회사생활도 어차피 재택근무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일할 때만 일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게임 화면이나 SNS를 들여다보며 뒹굴거리면 되는 환경이에요. 그러다가 질리면 고양이 뱃살이나 조물딱거리고요. 참 느슨하게 흘러가는 생활입니다.

 

대신 내 생활공간을 가족이라는 타인들과 공유하는 것에는 당연한 불편이 따릅니다. 사소한 감정다툼이 대부분이지만 의견의 차이로 인해 몇 시간동안 언쟁을 벌이기도 하죠. 최근에는 페미니즘에 대한 얘기로 언니나 아빠와 한참 다투었습니다. (지금 세상이 부조리하다는 인식은 공유하면서 왜 세상을 좀 바꿔나가자는 얘기는 그렇게까지 래디컬하게 받아들이는 걸까요. 신자유주의를 체화하고 기존 성소수자 혐오 논리를 답습하는 '요즘 랟펨'에 대해 크게 반발하는 입장으로서는 졸지에 집에서 '래디컬 페미니스트'라고 불리고 있는 상황이 좀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당연히 집에서 싸움날 주제를 가지고 왜 굳이 화두를 던지냐는 얘기를 친구들에게 많이 들었는데, 여기에는 나름 사정이 있습니다. 지금 가족 간 사이가 별로 좋지 않아요. 경력단절 후 커리어패스와 무관한 비정규직/계약직을 전전하고 있는 언니는 '지금 내 나이에 남들은 이루어놓은 것을 나는 하나도 가지지 못했다'라는 생각에 시달리고 있고, "죽지 못해 산다"는 얘기 같은 걸 자꾸 부모님 앞에서 늘어놓습니다. 엄마는 엄마대로 퇴직 후 텅 비어버린 생활과 그걸 받쳐주지 못하는 딸들에게 지쳐서 자꾸만 풍수지리 같은 것에 빠져서는 언니 방에 '무슨무슨 띠에 좋은 동물 장식품' 같은 걸 몇 만원씩 주고 사서 놓아두기도 하는데, 그걸 또 언니는 못 견뎌서 자꾸 치워버리니까 결국 엄마랑 사이가 크게 틀어지고 말았어요. 같은 밥상에 앉지도 않을 정도로요. 그나마 사이에서 완충을 하고 있던 아빠마저 어제는 크게 화를 냈습니다. 이런 판국에 저라도 아무말이나 지껄이지 않는 이상, 집안은 그대로 침묵에 빠질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이것저것 말을 꺼내다보니 자꾸 제 관심사가 나오게 되는 거죠. 조금 화가 나기는 하지만, 오히려 저의 생각에 반박을 가할 때 아빠와 언니는 그나마 가장 사이가 좋아보이기는 합디다.

 

가족이라고 해 보아야 결국은 타인입니다. 그리고 타인과의 공동생활에서는 지켜야 할 예의가 있고, 불편해도 적당히 넘어가야 할 부분들이 있죠. 그런데 그게 안 돼서 지금 집안 분위기가 좀 냉랭하네요. 저는 감정싸움의 한 축으로 나서서 싸우지는 않지만, 어느 쪽 얘기건 듣고 있자면 좀 죽고 싶어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서 요 1~2주간 오랜만에 자해를 조금 했어요. 물론 의사한테 한 소리 들었습니다. 사실 집에서 오가는 얘기들이 너무 한심한 수준이기 때문에 거기에 제 기분까지 휩쓸려버리는 것이 스스로도 어이가 없지만, 그게 또 마음대로 안 되니까 병원에 다니고 약을 먹는 거겠죠.

 

음... 가족 얘기를 두서없이 썼는데요, 저 자신의 얘기는 별로 할 게 없네요. 그냥... 폰게임을 하고 있구요, PC게임이나 영화같은 것에는 손을 못 대고 있어요. 그럴 기력이 없다는 뜻이죠. 이것저것 보고 하고 즐기곤 싶은데, 그런 욕구 자체가 마음 속에서 우러나오는 갈망이라기보다는 거의 밀린 과제처럼 마음을 짓누르고 있다는 것에 가깝겠네요.

 

여러모로 자취하면서 취준을 할 때... 아니, 솔직히 말하면 그냥 실망실업자 비슷한 상태로 있을 때랑 현재 마음 상태가 비슷한 것 같아요. 다른 게 있다면 병원에 가는 빈도와 집의 청결도 같은 것들이 아닐까요. 가족들이 있긴 하니까 어쨌든 스몰토크를 하고, 사회적 웃음을 짓고, 돌아서서 담배나 피면서 트위터에 넋두리 하고. 그래도 쓰레기집 속에 혼자 누워 있을 때보다는 나은 것 같습니다. 남들 보기에도 그럴 거고요.

 

 

오랜만에 140자 이상의 글을 써 보려고 하니 그냥 내용이 이랬다 저랬다 하는 잡소리가 되어버렸습니다. 다만, 그런대로 지내고 있다는 소식은 어찌저찌 전해졌기를 바랍니다. 듣고 싶으신 얘기가 있다면 편하게 알려주세요. 생각도 표현도 흐릿하게 뭉개져가는 하루하루 속에서 혼자 발버둥쳐 빠져나가기에는, 제가 너무나도 수동적인 사람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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