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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

나잇값

Gazamee 2018. 3. 19. 16:50

매일 적어도 한 번은 밥을 먹는다. 되도록 밤에 자서 아침에 깨려고 노력한다. 세탁기를 돌릴 만큼의 빨래가 모이면 즉각 빨고 널어서 말린다. 무엇보다도 '누가 찾아온다고 했을 때 잠깐만 정돈하면 맞이할 수 있을 정도의 청결도'를 유지하려 하고 있다. 건물 앞에 새로 마련된 재활용 쓰레기 분리장과 만화책만 한가득 꽂아놓은 책장이 큰 도움을 주고 있다. 물론 실제로 찾아오는 사람은 없다. 내 방은 내 방이니까 그나마 올 만한 위치에 있다.


지난한 무기력의 세월을 벗겨내고 이제야 겨우 최소한의 일상생활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누가 봐도 가장 끔찍했을 시기를 청산했다는 생각에 마음 속이 조금씩 근질거린다. 스스로를 칭찬하고 싶다. 아니, 사실 자존감이 형편없는 내가 나를 칭찬해 봐야 별 의미가 없다. 나는 누군가에게 칭찬을 받고 싶다. 잘 이겨냈다고, 천천히 나아가자고 다독이는 말을 듣고 싶다. 뒤틀린 성정으로 속뜻을 헤집을 필요 없는 온기에 안심하고 싶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내 나이가 너무 많다. 나의 욕망은 결국 '젖니를 뺄 때 울지 않았다'거나 '슈퍼에서 과자를 사달라고 드러누워 생떼를 부리지 않은' 것에 대한 칭찬처럼 유치한 수준이다. 나를 포용해 줄 개념적 부모를 갈구하며 방바닥에 드러누워 있는동안 시간은 착실히 지났다. 마땅히 스스로의 의복과 식사를 (주택의 경우는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에게 아직 어려우므로) 영위할 수 있어야 할 나이의 성인의 생활로서는 지극히 한심하다. 나도 알고 있다. 아주 잘 안다고는 말 못하지만, 아무튼 알고는 있다. 그래서 지금의 내가 여전히 뒤틀려 있다는 감각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어쨌든 나의 성과와 노력은 모두 부족하다.


무심히 스쳐지났던 수많은 사람들이 떠오른다. 학교생활 따위는 내던지고 뒤떨어진 사상에 투신하던 학과 선배, 팀 프로젝트에서 단 한 줄의 글도 제대로 써 내지 못하던 팀원, 수 년만에 연락해서는 사이비 종교를 권유하던 동창, 아무튼간에 저 사람은 대체 뭘 하고 있나 싶었던 수많은 이들. 어쩌면, 그리고 아마도 실제로 그들 모두가 나보다 훨씬 자신의 삶에 충실하게 살아가고 있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과 질투에 휩싸인다. '차라리 나도 제도의 성실한 부역자이고 싶었다'는 말을 통해 있는 힘껏 그들의 성실을 깎아내린다. 내 의지와는 무관하다고 속 보이는 발뺌을 하며, 나는 얼마든지 더 추악해질 수 있다.


그렇게 나는 허비된 시간들의 복권에 힘을 쏟으며 또다시 지금을 폐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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