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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소매에 쓸리는 피부가 아프지 않을 즈음에 글을 써 본다. 심호흡을 한다. 잘 하려는 생각을 버리고, 일단은 할 수 있다는 것부터 확인해야 한다.
자살사고에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 중 하나는 경제적 상황이라고 한다. 그것은 나에게도 충분히 해당되는 일인데, 이 나이가 되도록 부모 등골이나 빨아먹고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나를 온가족이 답답하게 여기는 것은 어느 정도 알고 있지만, 서로 함구하고 있는지라 정확히 어떤 상황인지는 모른다. 내가 나이에 비해 어린아이 취급을 받고 아직도 가족의 수입을 잘 모르는 것은, 애초에 내가 거기에 낄 자격을 얻은 적이 없기 때문이리라.
이렇게 꽉 막힌 상황에서 언니가 연락을 했다. 내용은 특별할 것이 없었지만, 어쨌든 나는 또 죽고싶어졌다. 얼마만에 자해를 했는지 모르겠다. 물에 담근 손목을 정신없이 칼로 그어대고 수건에 둘둘 말아 주먹으로 내려쳤다. 가로, 세로, 대각선으로 갈라진 칼집은 두어 차례 세면대 속을 물들였지만 그뿐이었다. 나는 어쩐지 냉정하게도 격자로 썰어낸 횟감이나 망고 따위를 생각하며 살점을 집어내고 싶었지만, 물론 그러지는 못했다. 애초에 그만큼 깊은 상처가 아니니까.
(아야 씨발 근데 노트북에 쓸리니까 아프네)
상처가 아물고 딱지가 떨어질 무렵에는 각질이 일어난다. 구질구질하고 징그럽게 일어나는 각질을 손톱으로 집어 뜯어낸다. 벌레가 뽑아내는 실처럼 가늘고 길게 일어날 때도 있고, 커다란 덩어리로 뭉칠 때도 있다. 무기력하게 누운 채 왼팔만을 들어올려, 조금씩 옅어지는 상처에서 허옇게 일어나는 각질 조각들을 하나하나 떼어낸다. 끝도 없이, 끝도 없이...
그러다 문득 찬장에서 노끈을 꺼내서 목에 감았다. 밤마다 목에 감은 빨간 노끈은 산 지 얼마 되지 않은 흰 이어폰에 붉은 물을 들였다. 목을 칭칭 감은 끈의 끄트머리를 손에 감다 발에 묶다 하면서, 어떻게 숨이 막히는 감각이 쾌감이 될 수 있는지 매번 의아해한다. 이대로라면 자다가 죽을 수 있을까, 하는 식으로 어떻게든 묶어본 끈은 언제나 별로 오래가지 못한다. 나는 바닥에 누워 추하게 발버둥치며 끈을 자르거나 풀어내고, 일어났을 때는 몇 겹이래봐야 허술하기 짝이 없게 목에 감긴 노끈 쪼가리 뿐이다.
눈알이 튀어나올 것만 같았던 지난밤의 조흔은 언제나 순식간에 사라져버린다. 거울로 목덜미를 보고는 허망하게 누워서 다시 팔의 각질을 야금야금 뜯어내며 나는 멍하니 생각하는 것이다. 아, 또 살아남아 버렸구나. 이 상처들도 또 하얀 작대기 수십개로 손목에 남아, 팔을 쓸어올릴 때마다 찌글대며 구겨질테다. 결국 남는 것은 그것 정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