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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다

떠나는 회원의 글

Gazamee 2017. 5. 11. 17:02

(완고. 선택적 단어교정 완료)


[떠나는 회원의 글] 구질구질 -짖음


 학교를 떠나려고 한다. 떠날 수 있을까? 음, 사실 잘 모르겠다. 학기가 거의 끝나가도록 제대로 된 연구 진행을 하기는커녕, 지도교수 얼굴 한 번 보지 않은 채 대충 머릿속에만 내던져 놓은 졸업논문을 떠올린다. 이런… 진짜로 모르겠다. 이제는 정말 떠나야 하긴 할 텐데. 3주에 한 번 정도 만나는 의사는 자꾸 무슨 아귀지옥에 빠진 중생을 바라보는 부처의 얼굴로 "너무 힘들면 수료라는 방법도 있어요"라고 말하지만, 내가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것은 딱히 정병 때문이 아니라 그냥 게을러서일 뿐이라고 말하기가 곤란하다. 그리고 정말 몰릴 대로 몰려서는 이렇게, 여태껏 기획글 한 번 써본 적도 없는 <퀴어, 플라이>로 느닷없이 도망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도망이 결코 낯설지는 않다. 첫사랑을 말아먹은 후 만화를 그리는 데에 전념했던 10년 전, 수험 공부가 지지리도 하기 싫어서 클럽활동에 영혼을 불태웠던 8년 전, 화려하게도 폭발한 마지막 연애의 기억을 지우려 학과 학생회와 운동권에서 정신없이 굴렀던 5년 전, 그리고 결국 모든 것을 다 때려치운 이후 4학년이 되면서야 겨우 큐이즈에 가입한 그 순간까지도 언제나 나는 도망치는 사람이었다. 큐이즈에 장장 3년 반 동안 영겁의 4학년을 갈아 넣는 것으로써 자신에게서 끊임없이 도망치고 있었다는 것, 그리고 마침내는 동아리와 내가 서로에게 구질구질한 존재가 되어 버렸음을 마지못해 인정한 후에야 겨우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노력에 비해 언제나 애매하게 운이 좋았던 나는 모든 능력이 어중간한 상태에 늘 머물러 있었고, 어찌할 도리가 없는 몸뚱이를 필요로 해줄 곳에 자아를 의탁하려고 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꾸준히 일손을 잃어가는 학생단체에서 이러한 어중이떠중이는 무척이나 손을 벌리기 좋은 존재이다. (그렇다고 학생단체 하는 사람 전부가 어중이떠중이라는 얘기는 아니니까 제발 이상하게 읽고 화내지 마시라) 나는 이미 그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고, 큐이즈에 가입하고 곧장 동아리 운영을 힐끔대고 있자니 아니나 다를까 아직 반년은 지나야 맡게 될 차기 대표 제의가 들어왔다. 이에 나는 "누가 해야 할 일을 할 사람이 없으면 내가 하는 편"이라며 아주 겸손하면서도 성실한 일꾼 같은, 그리도 슬프게도 그때까지만 해도 꽤 진심이었던 말로 화답했다. 돌이켜보면 쓴웃음이 나는 순간이다.


 그래서, 나는 그때를 후회하는가? 그건 아니다. 창립 20주년을 맞은 '호모 소굴 우두머리'를 맡은 직후부터 동아리 안팎으로 온갖 일이 터졌고 그때마다 골치가 썩었지만, 그 이상으로 즐겁고 보람찬 한 해였다. 여러 실무에 숙달된 동아리 선배들과 이런저런 판을 새로 벌일 열정이 가득한 친구들이 내 곁에 있었고, 이번에도 역시 억세게 운이 좋았던 나는 (물론 내 딴에는 존나 열심히) 그들이 하고 있는 것을 슬쩍슬쩍 곁눈질하다가 가끔씩 마감 날짜나 상기시켜주는 것으로 여기저기서 잘한다 소리를 넘치도록 들을 수 있었다. 이렇게 많은 사람에게서 칭찬을 들은 것은 처음이었다. 서울대에 합격했을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그때는 주변에 칭찬해줄 사람이 별로 없어서… 아무튼 나는 성공적으로 동아리에 자아를 의탁했고, 동아리는 제법 괜찮은 성과를 이룩해 낸 것 같다.


 거기서 그만뒀어야 했다.


 대표로서 맡았던 나의 직무는 2학기 종강총회를 기점으로 공식적으로 종료되었으며, 그때 나는 동아리 일을 그만둘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러지 않았다. 물론 조그마한 항변 정도는 할 수 있을 것이다. 큐이즈의 활동 계획은 기본 1년 단위로 구성되는데, 내 다음으로 대표를 맡아주었던 사람들은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인해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대표직을 내려놓았다. 그러므로 전임자인 나로서는 충분히 인수인계를 해 줄만한 시간이… 음, 내가 지껄이면서도 존나 구차하군. 이건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닌 것 같다. 왜냐하면 후임자가 1년을 채웠었더라도 어차피 나는 동아리가 꾸려갈 1년간의 로드맵과 그에 따른 각 프로세스를 인수인계하는 데에 실패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에 대해서 또 티끌 같은 변명을 해보자면, 일단 임기가 끝난 직후에 해당 내용을 문서로 정리해보려는 시도는 했었다. 기본적으로 나는 혼자서 뭔가를 시작하는 게 아예 불가능할 정도로 게으른 무지렁이지만, 그때는 아무튼 온갖 곳에서 칭찬을 받은 덕에 존나 뽕이 차 있었다. 하지만 서문과 목차를 쓴 것만으로 문서는 벌써 10페이지를 훌쩍 넘겼고, 이러다 책 한 권 내겠다 싶었던 나는 문서화를 포기했다. 어차피 지금 있는 매뉴얼이라고 잘 보는 것도 아닌데, 그냥 내가 붙어서 조언을 해주는 것으로 괜찮을 거라고… 생각을 했고 결과적으로 괜찮지 않았지, 음. 그게 괜찮지가 않았다. 애초에 괜찮을 수가 없는 방법이었다.


 방식 자체가 근본적으로 문제인가? 적어도 내 생각엔 아니다. 동아리를 직접 굴리던 사람이 한 발짝 떨어져서 관망하다가 필요할 때 조언을 제공하는, 대충 '재야의 현자' 비슷한 게 되는 것은 제법 오랫동안 이어진 관행이었을뿐더러 실제로 이렇게 해서 도움이 된 적도 부지기수다. 문제는 또다시 나에게 있었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동아리에 자아를 의탁하고 있었으며 그 의존 관계를 끊지 않았다. 그런 상태로 우두머리 감투를 내려놓은 나에게, '재야의 현자'란 얼마나 구미 당기는 타이틀이었겠는가? 아무것도 안 하고 있다가 가끔 꼴리면 후임자들이 일하는 걸 한번씩 곁눈질하고, "그건 그렇게 하는게 아니에요^^"라며 고나리질만 할 수 있는 위치. 나는 그런 '야매 현자'가 되고 싶었다. (물론 이는 '혼모노 현자'도 분명히 있음을 전제로 한다) 오, 써놓고 보니 새삼 개짱이네. 자신에게 환멸 나서 이 글을 쓰는 지금까지도 솔직히 욕심을 버렸다고는 못 하겠다.


 '특별히 무슨 자리를 맡지도 않고도 현자 된 사람이 오조오억명인데, 1년간 무려 단독 대표씩이나 한 내가 못할 게 뭐 있담?' 이게 내 솔직하고, 더럽게 오만한 생각이었다. 조금 더 까발려 보자면 '이쯤 했으니 이제 뒷사람들이 좀 알아 뫼실 일이지' 같은 태도도 깔려 있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말 같지도 않다. 아니, 말로 하진 않았지만. 물론 내가 정말로 동아리에 기여한 게 0도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으나, 그렇다고 해서 도대체 내가 뭐가 그렇게 잘나서 동아리 선배들을 은근슬쩍 낮잡아 본단 말인가. 심지어 그들에게 엄청나게 많은 도움을 받은 주제에. 그때 그 사람들이 이 글을 보고 달려와서 멱살을 잡아도 할 말이… 전혀 없을지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간에 그들은 그러지 않을 것이다. (=참회할테니 제발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세요….)


 그래서 나는 어떻게 되었는가? 무척 안타깝게도, 나는 한 해간 또다시 동아리에 자아 외주를 주는 데에 성공해 버렸다. 앞에서도 한 번 언급했지만, 동아리 실무의 중심이 되어줄 사람들이 사정상 임기를 채우지 못하는 일들이 연달아 벌어졌기 때문이다. 화려한 20주년을 보낸 후 실무진이 누적된 피로감과 인력 부족에 시달리고 있을 때, 나는 '전에 고생했으니까' 사람들이 어떻게 고통을 받고 있는지 관망이나 하고 있었다. 아, 정말로 그렇게까지 아무 일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저 수많은 일들 중에서도 가장 누가 하든 상관없을 일만 주워다 처리를 했을 뿐이다. 실제로 가장 머리를 굴려야 하고 또 가장 많은 사람의 손이 필요했던 건들에 대해서는 한두 마디씩 툭툭 던지는 것으로 혼자 할 만큼 했다고 만족해 버리거나, 심지어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동아리방에 얼굴조차 비치지 않기도 했다. "야, 내가 그만큼 했으면 이제 내 인생도 좀 챙길 때 됐지." 하면서 온갖 생색을 내는 동안 한 해는 손쉽게 흘러갔다.


 그리고 올해가 되었다. 학기마다 등록과 휴학과 졸업신청과 취소를 반복하는 사이 대학에서 보낸 시간은 초등학교에서 보낸 시간보다 길어졌고, 말로만 인생 챙기겠다던 나는 실제로 뭘 한 것도 아니었기에 여전히 어중이떠중이인 채로 남았다. 그동안 나는 부전공을 포기했고, 대학원에 갈만한 최소한의 능력조차 갖추지 못했다는 것을 마침내 시인했으며, 취업을 하기 위한 그 어떤 준비도 하지 않은 데다, 아예 운동판에서 구를만한 자질도 갖추지 못했다. (대학에 들어올 때 가졌던 꿈과 희망과 피 땀 눈물 어쩌구 저쩌구 나부랭이는 애저녁에 포기했고, 정신줄 놓고 몇 주간 꼬박꼬박 사본 연금복권의 최고 당첨 금액은 2천 원이었다) 언젠가는 떠날 수밖에 없는 곳에 영원히 인생을 맡길 수 있을 거라고 무심결에 착각이라도 한 것인지, 아니면 지금까지 그래왔듯 앞으로도 운 좋게 살아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이라도 했던 건지 모르겠다. 큐이즈라는 지지대에 칭칭 감겨 오른 시간들은, 작대기 하나 뽑으려고 하자마자 맥없이 무너져 내렸다. 붕괴 직전까지도 정신을 못 차린 내가 붙잡고 있던 지푸라기 같은 생각은 '동아리에서 유급 상근활동가로 일할 수 있으면 좋겠다' 따위의 허황된 것뿐이었다. (물론 이를 들은 동아리의 혼모노 현자들은 하나같이 '그럴 수 있으면 내가 할거임'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요컨대, 세간의 기준으로 봐서 내 인생은 만 3년 반 동안 존나 곱게도 빻아졌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동안 큐이즈가 내 인생을 빻았는가? 아니 그냥 내가 존나 가만 있는 동아리에 혼자 기대다 못해 꼴아박고 개박살남… 아무튼 버석이는 인생 쪼가리들을 그저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던 나는, 뒤늦게나마 인생 파편들을 그러모아 다시 좀 주물주물하기는커녕 스스로에 대한 오갈 데 없는 분노를 다른 대상에게 표출하기 시작했다. 동아리 자체에 대해서? 아니, 그것은 불가능했다. 큐이즈는 너무나도 이질적인 개인과 소집단으로 이루어졌으며, 다른 학내 단체들과 마찬가지로 시시각각 변화한다. 따라서 동아리 자체에 대해 화를 내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고, 내 속이 풀릴 수도 없을 것이었다. 왜 추측형인가 함은, 어차피 내가 큐이즈라는 곳을 너무 좋아하고 여기 말고는 갈 데도 없어서 (※주의! 따라 하지 마세요) 욕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뭔가 욕은 해야 쓰겠는데, 쉽고 간편한 3분 타깃이 뭐 없을까? 없긴 왜 없어~ 큐이즈 운영진이 있잖아!


 대표직을 역임했던 나, 은퇴를 했지만 계속 일하는 사람들 사이에 남은 나, 그렇게 남아서 다른 실무진이 단기간에 빠져나가는 것을 보고 있었던 나, '그러므로 태평성대를 이룬 선왕 대접도 못 받고 여전히 일선에서 굴러야 하는 억울한 나'. 이 괴악한 흐름에 브레이크는 없었고, 입맛대로 버무려진 권위와 피해의식의 끔찍한 혼종이 나에게 총알배송되었다. 뭐… 원래 없던 상품 같지는 않고, 오히려 파워셀러였을 수는 있을 것 같다. 다만 애초에 사면 안 될 상품인 게 문제지. 내가 마지막 정신줄을 잡고 있었더라면 그 좆같은 상자를 깔끔히 봉인된 상태 그대로 즉시 반품… 했을지 어떨지는 중요하지 않구나… 뻐킹… 자꾸 현실도피가 하고 싶어서 이것저것 가정하려고 하네… 아무튼, 실제로 나는 신나서 상자를 풀어헤치고 즉각 구매확정을 한 뒤 그 자리에서 착용까지 해 버렸다. 그리고 오잉? 짖음 의 상태가…! (두구두구둥둥) 짠! 짖음 은(는) 모두까기인형 (으)로 진화했다! 모두까기인형 의 광역 공격! 효과는 굉장했다!


 농담처럼 말했지만 진짜로 굉장했다. 동아리가 아니라 나 자신에게. 올해 내내, 늘 항상 언제나 나는 화가 나 있었다. 마음에 차게 일을 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고 생각했다. 요즘 애들은 능력도 없고 노오력도 안 한다며 주구장창 불평하고 다녔다. 동아리 운영 돌아가는 꼬라지가 개판이라고 이미 손 뗀 사람들한테까지 웅앵거렸다. 커다랗고 모호하고 내가 너무나 사랑해버린 큐이즈 대신, 그 큐이즈의 제도적 유지보수에 참여하고 있는 한 줌의 후임자들에게 핀포인트를 맞추었다. 범위를 한껏 좁혀 두었으니, 이제 뭐가 됐든 레이더에 걸리기만 하면 얼마든지 욕할 수 있었다. 나는 여전히 내가 욕하려는 사람들 안에 들어있었고, 그러므로 그저 같은 자리에 서서 빙글빙글 돌기만 하면 됐으니까. 그렇게 무려 반년 가까이 피버 모드가 끊임없이 발동했고 나는 열과 성을 다해서 화를 냈다. 물론 그 분노를 딱히 생산적 활동(동아리 일이든, 내 인생 챙기는 일이든)에 연료로 쏟아붓지는 않았고, 그냥 한곳에 피워둔 모닥불에 계속 기름이나 끼얹으면서 얼마나 활활 잘 타는지 보고만 있었다.


 그리고 어느 날 그 불은 그냥 훅 꺼졌다. 더는 불태울 에너지가 나에게 남아 있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고, 이제는 내가 캠프파이어를 끝내고 여기서 떠나야 하기 때문이기도 했다. 사그라드는 불길을 보고 문득 생각했다. 아, 나 꼰대구나. 존나 시발 구질구질한 개 꼰대구나. 그제야 심각한 현타가 밀려왔다. 일도 안 할 거면 그냥 입 다물고 관심을 끌걸, 아니 임기 끝나고 손 뗄 시기에 괜히 질척거리지 말고 곧장 손 뗄걸(약간 뻥), 아니 애초에 자아를 의탁하겠답시고 동아리 일에 손을 대지 말걸(존나 개뻥)… 흐르는 강물을 거꾸로 거슬러 오르는 힘없는 후회들은 당연히 아무 소용이 없었다. 꼰대가 되지 않을 기회는 언제라도 있었다. 책임감이라는 말로 곱게 포장한 망치를 휘둘러, 퇴로를 부숴 버린 건 나였다. 그것도 아주 오랜 시간에 걸쳐, 꾸준히.


 시간의 흐름은 막을 수 없고, 그에 따라 동아리도 끊임없이 바뀌어 간다. 당연히 알고 있는 일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의도적으로 '모르고' 있었던 일이기도 했다. 왜냐하면 나는 동아리에 자아를 의탁하고 있었으니까. 변화할 수밖에 없는 것에다 모든 무게를 실어 기댄 채, 내가 기억하는 가장 '빛나던' 순간을 들이밀었다. 그리고 왜 그때와 똑같이 할 수 없냐고 질책했다. 내가 '1년간 보살펴 준' 동아리가 이젠 '알아서 빛나' 주어야 내 인생의 가치가 증명될 수 있었으니까. 나는 큐이즈를 좋아하는 것만큼이나 나 자신을 너무 좋아하고, 그렇지만 내 안에서 그것에 대한 근거를 찾는 데에는 늘 실패해 왔고, 그러다 보니 바깥으로부터 나의 알량한 자기애를 뒷받침해줄 무언가를 늘 필요로 해 왔고, 3년 반이라는 기간 동안 그 재료는 큐이즈였다. 나는 내가 아닌 것에다 나의 의미를 내던져 놓고, 왜 그것을 주워섬겨 주지 않냐고 윽박을 지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 현자가 된 줄 알았나요? 유감! 꼰대였습니다!


 여기서 더 끔찍한 소리를 잠시 해보자면, 나는 나같이 동아리 일에다 ~내 삶의 의미 찾기~ 외주나 하청을 주려다 망할 사람이 앞으로도 많이 생길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니 그게 어떻게 없을 수가 있겠어. 잘은 모르지만 내 이전에도 이미 많이 있었을 텐데, 하물며 큐이즈에 대해 학내 성소수자 개인이 갖는 절박함이 점점 희미해져 가는 흐름 속에서 어떻게? 어쨌든 성공해서 나가면 동아리에 괜히 화풀이하지나 않겠지만, 자기 인생에만 몰빵해서 먹고사니즘 해결하기도 나날이 팍팍해져 가는데 어떻게? 물론 그들은 일을 하는 순간만큼은 '순수하게 동아리를 사랑하는 회원'일 수도 있고, '성소수자로서 가지는 사명감에 충실한 일꾼'일 수도 있겠다. 그들은 아마도 무기력하게 일을 떠맡는 사람들보다는 꽤 열심히 일할 것이며, (물론 열심히 해서 대차게 말아먹을 수도 있겠지만)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낼 수도 있을 것이다. 어쩌다 보면 ☆백마 탄 초인☆이 나올 수도 있겠지. 뭐, 성과라는 게 대체 무엇이며 초인은 누구 기준이냐는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말이다.


 하지만 이런 사람들에 대해서야말로, 언제나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자신의 의의를 동아리에서의 업적으로 계속 채워 나가려고 하면 필연적으로 망한다. 아니, 좀 더 확실하게 말하자. 동아리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그 사람의 인생은 어떻게든 망한다. 그러니까 동아리 운영에 과하게 에너제틱한 사람이 있으면, 혹시라도 그 사람이 존나 강하게 동아리에 인생을 꼴아박아서 개박살이 나지나 않는지 지켜봐 주었으면 좋겠다. 나는 스스로 내 인생을 구제하는 데에도 실패했고, 주변에서 "이젠 됐다"고 부드럽게 말해줘도 여전히 정신을 못 차렸다. 나는 내가 '그간 쌓아온 노하우를 통해 동아리에 기여'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좋았던 시절과의 틀린그림찾기'를 하면서 고나리질이나 하고 있었다. 그래도 일단 어떻게든 자각을 하기는 했지만, 그건 순전히 내가 더는 학교에 남아있을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만일 이번 학기에 졸업하려고 하지 않았거나 졸업 후 대학원에 진학하려고 했더라면? 나는 내가 꼰대라는 걸 알아서 눈치챘을 거라는 확신이 없다. 그러니 나처럼 자신의 구질구질함을 제때 깨닫지 못하고, 자아 좀 채워 보려다가 밑천까지 잃고 나갈 사람들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었으면 좋겠다. (물론 이건 그 사람의 인생에 자비이기도 하지만, 괜히 고양이 손이라도 빌려 보려다가 포크레인으로 동아리 다 때려 부술까 봐 하는 말이기도… 아이쿠, 또 꼰대질을 했네! ;P)


 그리고 우습게도 이 장황했던 글 역시 구질구질한 꼰대질에 지나지 않는다. (김기덕 풍으로) 야 이 줫같은 새끼야! 씨발 동아리를 통해서 자기, 자아를 의탁하는 개새끼! …물론 이딴 말 좀 했다고 내가 깨끗이 씻긴 영혼이 될 거라고는 당연히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나는 지금의 내가 변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결국 동아리에의 일방적인 '불화'를 봉합하지 못하였다고 마지막으로 자백하는 것이다.


 학교를 떠나려고 한다. 떠나야 할까? 단연코 떠나야 한다. 더는 큐이즈를 구질구질하다고 느끼고 싶지도, 이후에 남을 큐이즈 사람들에게 구질구질한 꼰대로 기억되고 싶지도 않다. 아름다운 이별이 될 기회는 오래전에 놓쳤지만, 이보다 더 부끄러운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다. 그러므로 이것은 동아리로 도망쳐와 결국 다시 동아리로부터 도망쳐 나가는 사람의 마지막 기록이다. 그것도 아주 지리멸렬한 자기변명과 씨알도 안 먹힐 합리화로 떡칠이 된 구질구질한 기록이다. 이제 나는 입을 다문다. 지난날의 인간에게 조언을 요청한다면 다시 입을 열지 못할 것도 없지만, (나처럼 실패해서가 아니라 제대로 된 인생 계획을 가지고) 학교에 더 오래 남아있을 현자들이 많다. 그러니 내가 굳이 지껄이는 것은 별로 필요하지 않은 일 같다. 사실 이 글을 쓰는 과정에도 결국 입방정을 참지 못하고 온갖 곳에서 입을 털고 다녔는데, 이 글을 마무리하는 것으로 제발 아가리 좀 다물고 있었으면 좋겠다. 대신 몇 년 후에, 제대로 먹고살고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어떻게든 입에 풀칠이라도 하고 있다면 그때는 흔쾌히 지갑이나 열어주는 OB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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