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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

Gazamee 2018. 11. 23. 17:22

 거울은 끔찍하다. 거의 1년을 살아가는데도 여전히 "새 방"이라고 부르게 되는 나의 작은 방에는 원치 않는 거울들이 설치되어 있고, 그저 생활하는 것만으로도 자꾸만 나의 몸이 어떻게 비치는지를 곱씹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무척 고통스러운 일이다. 보통 집에서 변변한 옷을 걸치고 있지 않은지라 더욱 그렇기도 하다.


 어차피 시야에 들어온 김에 거울을 들여다본다. 덥수룩한 눈썹. 살덩이 눈꺼풀에 덮인 멍한 눈은 도수 높은 안경 뒤에서 조그맣게 쪼그라들어 있다. 있지도 않은 콧대를 지나면 가장자리가 시뻘건 콧볼이 널찍이 벌어져 있다. 툭 튀어나온 두툼한 입술 위의 인중에는 종종 깎아주지 않으면 도드라지는 털들이 있고, 아래턱에도 종종 굵고 진한 털이 몇 가락 자라나서 뽑아 주어야 한다. ("생물학적 여자는 절대 수염이 없거든요!"라고 말했던 누군가의 트윗을 보고 나는 놀랍게도 분노와 절망을 느꼈다) 골격 자체가 커다랗고 각진 얼굴은 살집으로 부풀어 있다. 불그스름하게 얼룩진 피부를 보다보면, 가죽을 벗겨낸 아래에는 지방이 곳곳에 맛있게 박힌 고깃덩이가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가만히 있으면 열에 아홉은 무언가 기분 나쁜 일이 있었냐고 물어보는 표정이라도 어떻게 해 보려, 눈을 크게 뜨고 생긋 웃어본다. 이마에 주름이 잡히고 삼백안은 희번득인다. 그래서 나는 늘 공연히 웃는 것을 그만두기로 한다.


 가로줄이 겹겹이 박힌 짧은 목 아래에는 고맙게도 얼굴 크기를 실감하지 못하게 해 주는 넓은 어깨가 있고, 보통 20대 전후로 낫는다고 하던 각화모공이 반소매 선이 선명한 팔뚝 위로 흉하게 펼쳐져 있다. 어깨 뒤에는 주사로도 어떻게 할 수 없었던 켈로이드 덩어리가 시커멓게 솟아 있고, 살이 출렁대는 팔뚝 아래에 덥수룩하게 자란 음모 중 몇몇은 한 모공에서 사이좋게 두 가닥이 나 있다. 거무스름한 팔꿈치가 찌글대도록 왼팔을 아래로 쭉 뻗고 팔의 안쪽을 보면 수 년에 걸쳐 자해를 한 자국이 하얀 격자가 되어 도드라져 보이고, 그리 가늘지 않은 손목 쪽으로 가면 얼마 전에 새로 앉은 피딱지가 아직 벗겨지지 않은 채 늘어서 있다. (어둠속에 내 손목 보다가 나도 몰래 손목을 그은 바람에 피를 제때 못 닦아서 딱지가 두껍게 앉았다. 원래는 이렇게 오래가지 않는다) 20대 후반이 되어서도 여전히 손을 쭉 펴면 손등의 살이 움푹 파이는 손등 위로 보이는 굵직한 손가락은 마치 무슨 요리채널에서 빵 반죽에 꽂아놓은 소시지 같다. 소시지와의 차이라면 손가락에도 털이 한껏 나 있다는 정도일까.


 만지지 않으면 거의 있는지도 모를 쇄골 아래에 달린 두 개의 비계덩어리는 몸통의 대각선 바깥 방향으로 각각 축 늘어져 있다. 윗배부터 불룩히 솟은 배때지에는 앉을 때마다 뒤룩뒤룩 접혔던 자국들이 선명히 새겨져 있다. 배꼽은 푹 찔러넣은 구멍처럼 저 안쪽에 박혀 있다. (어릴 때는 원래 사람 배꼽이 다 이렇게 푹 들어가 있는 줄 알았다) 좁은 골반과 땀띠 자국으로 시커멓게 얼룩진 엉덩이를 지나면 또다시 징그럽게 무성한 음모가 자라나 있고, 상반신에 비해서는 조금 얇은 편이지만 그래봐야 살이 쪄서 허벅지 안쪽이 쓸리는 다리통이 보인다. 무릎 언저리부터 굵고 길게 자라난 다리털은 내 몸에서도 가장 큰 컴플렉스인데, 나는 여태 한여름에 반바지를 돌아다니는 웬만한 남자들 중에서도 나보다 다리털이 굵고 길게 자라난 사람을 본 적이 좀처럼 없다. (종종 악몽을 꾸는데, 남들 앞에서 제모를 하지 않은 다리를 훤히 드러내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그것을 깨닫는 순간 나는 미칠듯한 수치심에 시달리며, 잠에서 깨고 나서도 한참을 고통스러워한다) 발목 뒤의 까진 흔적과 칙칙한 복사뼈 아래에는 너비에 비해 너무나도 짧아 이 무거운 몸을 제대로 지탱도 못 하는 작은 발이 있다. 아주 땅딸막해서 그 무게가 한층 두드러지는 몸뚱이를 말이다.


 자신의 몸을 사랑하라는 말, 모든 육신은 아름답다는 말은 쉽고도 무책임하다. 나 자신, 혹은 많은 사람들이 아름답다거나 추하다고 느끼는 육신은 분명히 있다. 심지어 온갖 광고며 캠페인에서 "아름답지 않지만 아름다운 몸"이라며 내놓는 수많은 이미지들도 사실은 이미 있던 미의 기준에 어느 정도 부합하는 것들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정말 없는가? 나는 그런 문구를 볼 때마다 한층 비참해진다. "모든 몸이 아름답다"는 말은 역겹도록 나를 그 "모든 몸"에서 밀어내 버린다. "외모를 기준으로 사회적인 차별을 해서는 안 된다"라는 데에는 물론 십분 동의하지만, 어쨌든 나는 외모차별로 손해를 보는 사람일 것이고, 차별이 사라진 세상도 내 몸을 만족스러울만큼 아름답게 만들어 주지는 않는다. 그렇게 불만족스러우면 노오력을 해서 이상에 가깝게 만들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아이고 죄송합니다, 그래도 좀 봐주세요. 방구석에 누워만 있는 백수 정신병자에게 그것은 너무나 물심양면으로 많은 비용을 소모해야 하는 일이랍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새상에는 해봤자 한계라는 게 있는 것들이 많답니다. 물론 완전히 신 포도 만들기네요. 틀린 말은 아니지만요. 요컨대 그냥 못 하겠다는 뜻이에요.


 그러니까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건 익숙해지는 것 뿐이다. 그리고 놀랍게도 나는 사실 이 몸뚱이가 이미 꽤 익숙하고, 찬찬히 뜯어보지 않는 이상 그렇게 심각한 불만족을 늘 품고 살지도 않는다. 물론 이 몸에 익숙해질 수 있는 건 세상에서 나 뿐이기에 어디에서도 맨몸을 내놓지 않겠지만. 오죽하면 죽을 생각을 할 때마다 하는 게 목욕재계를 하고 위아래로 옷을 걸치는 일일까. (어차피 진짜 죽으면 다 벗겨지겠지만요! 모르죠, 운이 좋아 응급실 정도는 실려갈 수도 있지 않겠어요? HAHAHA) 다만 내가 두 달에 한 번 정도 머리를 자르러 가던 동네 미용실이 문을 닫아서, 스트레스를 받으면 자꾸 피가 나도록 뜯어 비듬이 덕지덕지 자리잡은 두피 위로 80년대 장발 남대생처럼 이상하게 길어진 머리를 다듬으러 이제 어디로 가야 하나 정도가 요즘의 가장 큰 고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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