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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 있는 제 글들을 많은 분들이 봐 주시고, 또 종종 말씀을 남겨 주시곤 합니다. 가끔은 선의(라고 믿는 모종)의 질타일 때도 있지만, 대체로는 공감이나 격려의 내용입니다. 힘들었거나, 혹은 지금도 힘든 자신의 경험을 공유하면서 저에게 힘내라고 해 주시는 분들이 많아요. 비록 말 그대로 '힘내라'는 표현을 쓰는 것이 서로에게 부담스러운 것을 알기에 직접적으로 그렇게 말하지는 않으시더라도, 오히려 그렇기에 더더욱 저에게 힘을 내라는 메시지를 전하곤 하죠. 무척이나 감사한 일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가끔은 생각에 잠기게 됩니다. 왜냐하면 저는 그런대로 잘 지내고 있거든요.
정병에 대해서 간헐적으로, 그러나 꾸준히 얘기를 하면서 '그런대로 잘 지낸다'고 밝히는 것은 조금 죄책감이 들기도 하고 무섭기도 한 일입니다. 저는 남들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남들을 바라보는 저 자신은 잘 알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힘들어하는 남들을 바라보는 저의 태도는 썩 좋지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저는 '너어가말이야아~ 무어가 힘들다고 요오즘 젊은이가아아~~' 하며 면박을 주는 타입의 인간은 아니지요. 그건 스스로가 힘들다고 표현하는 사람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힘들죠', '어찌저찌 살아봐요', '좀 더 견딜만한 내일이 오기를' 따위의 말들을 하는 저 자신이 더욱 윤리적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가식이라서가 아닙니다. 오히려 진심이기 때문에 더 그래요.
저는 종종 타인의 불행을 눈에 보이는대로 규정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의 현실을 아주 납작하게 바라보며, 은연중에 그 사람이 저에게 위로받는 위치에 있길 바라는 것 같아요. 사실 제가 볼 수 있는 타인의 삶은 아주 작은 부분에 지나지 않습니다. 힘들다고 어딘가에 토로를 하면서도 어쩌면 그날 재미있는 것을 보고 깔깔 웃었을 수도 있고, 다른 사람들과 즐거운 한때를 가졌을 수도 있으며, 취미생활에 전념을 했을 수도 있고, 심지어 편안한 하루를 보냈을 수도 있습니다. 이 모든 것에는 문제가 없습니다. 적어도 저한테는 그러합니다. 힘들다는 것은 사람마다 천차만별인 것이고, 하루종일 울면서 식음을 전폐해야만 그 사람에게 진정성이 부여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죠.
하지만 저는 그 사람의 '힘들다'는 말을 보며 거의 즉각적으로 그의 불행을 가정합니다. 그리고 진심으로 그가 불행에서 빠져나오기를 바라고 맙니다. 어쩌면 여기까지는 제가 어떻게 할 수 없는 부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선의라고 불릴 수도 있겠죠. 최소한 악의는 아닐 겁니다. 그러나 여기서 다른 것을 본다면 어떨까요?
아주 못나게도, 내 눈에 힘들어 보였던 사람이 '내 생각만큼 힘들어하지 않는다'고 생각한 순간 저는 모종의 배신감을 느껴 왔습니다. 힘들다고 했으면서 잘만 지내네, 라고 무심코 생각하고 마는 것이죠. 그리고 곧, 끔찍한 감정들이 질척이며 뒤섞이는 소용돌이가 몰아칩니다. 상대의 삶에 나의 삶을 비교하며 느끼는 열등감, 그런 생각을 한 자신에 대한 자괴감, 누구를 탓할 수도 없어서 피아에게 모두 끓어오르는 분노 같은 것들이 그 속에 마구 뒤섞여 있습니다. 이런 감정의 실타래를 논리적으로 풀어나갈 길은 아마 저에게 없는 것 같지만, 어쨌든 저는 화가 나 버린다는 것입니다. 당신 불행하다고 했잖아! 근데 나보다 잘 지내고 있잖아! 라고요.
여기까지 읽으신 분들은 제가 왜 이 글을 쓰는지 눈치채셨을 것 같습니다. 정리하지도 못할 감정을 우선 드러내는 것은, 아무튼 다른 사람들이 저를 볼 때도 그렇게 느낄 것이라는 공포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감정에 맞서 스스로를 먼저 방어하겠다는 비겁함이 숨어 있지요. 제가 이곳에는 아주 부정적인 감정들에 대해서만 쓰곤 하지만, 사실 저는 그런대로 잘 지내고 있거든요. 어찌됐건 '좋은' 학교를 졸업해서 용돈 받고 살다가 결국 가족기업에 취직도 하고(이게 제일 재수없는 부분일 것 같습니다), 본가에서 같이 살면서 매일 고양이도 만지고, 의식주 문제가 대부분 해소된 상태에서 느긋하게 일하며 게임도 하고, 웃으면서 술도 마시고, 일주일에 한 번 동네 병원에 가서 '이번주도 나쁘지 않았다'고 주로 얘기하는, 그런 생활을 하고 있어요. 완전히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가족들이 제가 정병러라는 것과 성소수자라는 것도 그런대로 납득을 했고요. 과거의 제가 지금의 저의 글을, 누가 썼는지 모른 채로 읽게 된다면 아마 화가 날 것입니다. 힘들다더니 그렇게 금방 해결되는 거였잖아! 실제로 저 자신도 종종 그러한 혼란에 빠지곤 합니다. 내가 이렇게 될 걸 가지고 힘들다고 그렇게 난리를 쳤나? 하고요.
그렇기에, 저는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 중 누군가가 저를 보고 화가 나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그게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도 생각하고요. 위에서는 좋지 않은 태도라고 하지 않았냐고요? 저 자신의 경우에는 그렇게 느낍니다. 하지만 타인이 느끼는 것에 대해서는 제가 어떻게 말할 수 없다고 느낍니다. 왜냐면 저는 너무 멍청하고 주관이 흐리거든요. 저 자신의 행동양식으로서 올바르거나 혹은 그른 것이, 타인에게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떤 친구는 제가 너무 조심스럽다고 했지만, 저는 그냥 자신이 없는 사람일 뿐이에요. 그러니까 여러분이 저의 글과 저의 실제 생활을 비교하며 '생각보다 덜 힘들게 지내고 있음'에 대한 배신감을 느끼실 수 있다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감정이라는 것은 종종 그 발생을 막을 수 없기에, 그것이 표현하기에 적절하지 않다면 입 밖에 내는 것을 참는 것만으로 훌륭한 윤리적 행위가 달성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의 경우에도, 스스로의 입으로 훌륭하다는 말을 할 생각은 전혀 없고, 오히려 저 자신에게 있어서는 당연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만(저는 이것, '남들은 그럴 수 있지만 나는 그러면 안 된다'는 자신에의 기준이, 도덕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썩 오만불손한 사고방식이라고 생각할 때가 많아요. 물론 이 생각조차 남들에게는 도덕적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끊임없는 반복이지요), 이렇듯 이기적인 '배신감'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도 그렇게 해 주시면 감사하겠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저의 이기적인 마음은, 아직 표현되지 않은 (그리고 앞으로도 되지 않을 수 있는) 그 감정의 존재 자체를 두려워하고는 합니다. 말도 안 되는 얘기죠. 누구든 그렇게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저에 대해 누가 그렇게 '속으로 생각'하는 것마저 무서워서 벌벌 떤다는 것이 말이에요. 이건 절대로 해소될 수 없는 공포잖아요. 언제까지고 저는 모든 사람의 속내를 알 수가 없을테니까요. 그런데도 저는 그게 두렵습니다. 누군가 저에게 배신감을 느끼는 것이 무섭습니다. 아주 비겁한 사람입니다, 저는. 거기에 실망하실 수도 있고, 오히려 또다른 위로를 얻으실 수도 있고, 제가 가장 두려워한 그대로 저에게 분노와 배신감을 느끼실 수도 있습니다.
이 글을 어떻게 맺어야 할 지는 모르겠습니다. 저는 저의 비겁함을 먼저 내보임으로써 저를 때리지 말아달라고 호소하는, 그 자체로 비겁한 일을 또 하나 행했습니다. 실제로 저를 때리는 사람도 없고 제가 정말로 맞는 것도 아닌데도 말이에요. 과분한 걱정을 받으면서, 그런대로 잘 지낸다는 말 하나를 하는 게 그렇게 겁이 나서 이렇게 냅다 웅크리고 보았습니다. 한심하지요? 그래도, 반복하지만, 그런대로 잘 지내고 있어요 지금의 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