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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를 했다. 낯선 곳은 아니고, 10살부터 20살까지 살았던 그 동네로 돌아왔다. 최소한 10년, 아니 아마 부모님이 살아계신 동안은 이제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갈 일이 없을 것 같다. 부모님은 역시 이 동네가 안심된다며 즐거워하신다.
나는 기분이 좀 묘하다. 10살에는 친구들과 헤어지기 싫다고 울며 들어온 동네였고, 20살에 다시는 이곳으로 돌아오지 않겠다고 이를 갈며 나간 동네였는데, 30살이 되어 결국 돌아왔다는 사실이, 그리고 이 모든 기억들에 무덤덤한 스스로가 그냥 다 기묘하다. 부산으로 돌아올 때까지는 그래도 '낙향의 굴욕감'을 아주 조금 느낀 것 같았는데, 지금은 그런 느낌도 전혀 없다. 그렇다고 해서 그리움이나 반가움을 느끼는 것도 아니고, 그냥... 아무 생각도 들지가 않는다. 온가족이 이사하는 대작업을 거친 후라 아직 피곤해서 그런걸까. 아직 동네를 많이 돌아다니지 않아서 그럴까.
하지만 나는 이제 예전만큼 가족을 증오하지 않기에, 아마 앞으로도 그런 생각은 별로 들지 않을 것 같다. 서울에서의 8년간 나는 (물리적 거리와 무관하게) 가족과의 감정적 거리를 두는 법을 익혔고, 그건 집에 다시 들어와서도 여전히 몸에 배어있다. 아마도 나는 언젠가 다시 이 집을 나갈 것이지만, 이제는 예전처럼 악을 쓰며 귀향만은 않으려는 몸부림을 치지도 않을 것이다. 결국 뭐... 남이니까. 아무리 가까이 있더라도 내가 담을 쌓으면 결코 완전히 닿을 수는 없으니까. 결국 그런 게 아니었을까 싶다. 물론 서울생활이 의미없었다는 건 아니고.
내 방은 안락하고, 제법 마음에 든다. 어쩌면 평생동안 거쳐왔던 모든 '나만의 방' 중에서 가장 제대로 된 방의 꼴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더 별생각이 안드나? 그럴 수도 있겠다. 전에 살던 그 집으로 돌아갔더라면 나는 아마도 벽에 늘 습기가 차서 곰팡이가 피는 길가 쪽 방에 다시 들어가야 했을테니... 음... 그랬으면 좀 비참함을 느꼈을 것 같기도 하고.
한편 그렇게나 내가 평생 살 거라고, 혹은 떠나더라도 잊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던 자취방 주소가 더이상 기억나지 않는다는 사실에는 제법 놀랐다. 정확히 말하면 번지수와 건물은 기억하는데 내 방이 몇호였는지가 정말 떠오르지 않는다. 그곳에 켜켜이 쌓여 나를 둘러싸던 배달음식과 쓰레기와, 우울과 무력과 자해의 기억들이 이제는 많이 부식이 되었나보다.
글이 두서없이 굴러다닌다. 생각도 정리가 안된다. 별 생각이 안 드니까 가닥을 잡아내서 정리하는 것 자체가 애초에 무리였는지도 모른다. 그냥 뭐... 이제 각종 배송품을 받아볼 주소를 바꾸고 다니는 일이나 남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