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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슈퍼에서 변기 세정제를 샀다. 플라스틱 용기에 들어있고 달아놓으면 물이 파래지는 걸 사려고 했는데 옥시밖에 없길래, 대신 비누처럼 생긴 걸 샀다. 변기 가장자리에 달려고 포장을 뜯자 시큼한 시트러스 향이 확 풍겼다. 조금 소름이 돋았다. 향수같은 데에 쓰이는 은은한 시트러스 향이 아니라 세정용 제품에 쓰이는 강렬한 냄새였다. 그날은 화장실에 갈 때마다 속이 조금 메슥거렸다.


무기력하게 누운 사람이 비교적 쉽게 단백질을 섭취할 수 있는 메뉴는 역시 치킨이다. 쓰레기집을 치울 엄두는 안 나도 쓰레기를 더하지는 않으려고 나름대로 신경을 썼기에 대체로 순살치킨을 먹는 경우가 많았지만, 가끔은 정말로 뼈가 있는 치킨이 먹고 싶을 때가 있었다. 특히 옛날통닭이 그랬다. 그렇게 먹고 내버려둔 닭뼈가 썩는 특유의 냄새가 있다. 굉장히 형언하기 어려운 냄새다. 족발을 먹고 남은 돼지뼈를 내버려뒀을 때보다 훨씬.. 역겹게 구수한 냄새가 난다. 아마 닭을 먹을 때 좀더 쪽쪽 빨아먹어서 침이 묻는 것과도 연관이 있을 것 같다.


아직은 힘내면 방을 좀 치울 수 있을 것 같았던 시기, 특히 나름대로 쓰레기를 열심히 내놓고 방이 반정도는 좀 정리가 되었을 때 처음으로 그 냄새를 알았다. 그때는 아마 겨울이었고 내 방은 무척 건조했다. 이삼일 정도 특유의 냄새를 방 안에 풀풀 풍기고 나면 닭뼈 냄새는 비교적 빨리 사그라들었다. 하지만 그 기괴한 악취가 풍기는 것은 굉장히... 미묘하게 불쾌했다. 굳이 미묘하게 라고 표현하는 것은 내가 어릴적부터 하수구 냄새에서 그 비슷한 감각을 느꼈기 때문이다. 분명히 역한데도 마냥 싫지만도 않은 냄새. 다만 내가 살고 있는 공간에, 그 때의 감각을 불러일으키는 냄새가 가득차는 것은 당연히 절망적이었다. 그래서 닭뼈가 나오면 비닐봉지에 넣어서 묶어두게 되었다.


서론이 좀 길었는데, 진짜 말하고 싶었던 건 지금부터다.


처음에는 그냥 평범하게 뼈를 하얀 배달봉지에 넣고 묶었다. 그래도 비닐을 두겹 정도로는 한 것 같다. 다만 공기를 열심히 빼려는 생각은 별로 안 했다. 그게 문제였다. 닭뼈가 썩는 냄새가 방 안에 진동하는 대신, 조금 더 좁은 범위 내에서 의문의 산취가 코를 찔렀다. 지금 생각하면 이런 바보가 다 있나 싶지만 그때는 근원이 어디인지를 몰라서 난처했다. 무언가 자글대는 소음도 자꾸만 맴돌아서 한층 신경이 쓰였다. 진원지를 찾은 것은 그날 밤 무렵이었다. 어디서 엄청 급진적인 날벌레가 들어왔는지(냄새 때문에 늘 창문을 열어두었기에 가끔 방충망을 뚫고 새끼손톱만한 풍뎅이?가 침입하는 경우는 종종 있었다) 굉장히 붕붕거리는 소리가 나길래 살충제를 들고 귀를 기울였다. 잘 들어보니 방 안을 마구 날아다니는 소리가 아니라 초파리가 비닐봉지 가까이서 날 때 나는 날카로운 마찰음이었고... 바보같은 나는 그제서야 상황을 파악했다. 원인 모를 신내도, 둔탁하게 자글대는 소음도, 유독 커졌다 작아졌다 하는 날벌레 소리도 다 그 비닐봉지에서 나는 거였다.


봉지 안에서 초파리 구더기가 끓고 있었다. 하필 흰 봉지 안에 넣어둬서, 속에서 끓고 있는 구더기들의 실루엣이 비쳐 보였다. 아무리 봉지를 꽉 묶었어도 결국 벌레가 새어나올 구멍은 있는 것인지, 매듭 부분에는 몇 마리의 하얀 벌레들이 꿈틀대고 있었다. 나는 속으로 비명을 지르며 묶여있는 봉지의 겉면에 살충제를 마구 뿌렸다. 분사된 살충제 액상이 봉지 표면에서 뚝뚝 떨어질 정도로 정말 마구 뿌려댄 뒤에야 조금이나마 진정이 되었다. 적어도 바깥에 나와 있는 것들은 죽은 것 같았다. 속까지는 알 수 없었지만, 최소한 뿌리기 전보다는 좀 조용해졌다. 그냥 내가 그렇게 생각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그랬다.


거의 패닉 상태에 빠진 정신과는 달리, 무기력한 일상에 익숙해진 몸뚱이는 어이가 없게도 결국 또 자리에 누웠다. 혹시 몰라 머리맡에 살충제를 두었다. 그 다음 이틀 정도는 자고 일어났을 때 그리고 화장실에 다녀올 때마다 꼭 살충제를 뿌렸고, 냄새도 소리도 그때쯤은 잠잠해졌다. 구더기들이 누렇게 말라죽은 게 봉투 너머로 희미하게 보여서 알 수 있었다... 얼른 봉투를 집어서 종량제 봉투에 넣었다. 바깥으로 나와 있던 구더기의 시체 몇 개가 후두둑 떨어졌다. 소름이 끼쳤다.


그 이후로 뼈가 나오는 육식은 한층 꺼리게 되었고, 행여나 뼈가 나올 경우 까만 봉지에 최대한 공기를 빼고 넣어서 다시 흰 봉지에 넣고 그걸 또 지퍼백에 넣는 식으로 하여튼 엄청 밀봉을 했다. 사실 그냥 그때그때 버리면 됐겠지만... 그게 됐으면 그런 집에서 살고 있었겠나 내가... 초파리가 생기는 원인은 다양하고 내 방에는 비닐 쓰레기가 엄청 많았기 때문에 초파리가 비닐 스치며 날아다니는 소리는 그 이후로도 많이 들었지만, 최소한 구더기 끓는 산취와 봉지 안에서 드글거리는 소리는... 모르겠다 어쩌면 그 이후로도 한번 정도는 더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 트라우마라는 게 으레 그렇듯이 그때 그 느낌은 선명하게 남았지만 정작 그게 몇 번 있었던 일인지는 좀 가물가물하다.


아무튼 그 이후로 코를 찌르는 시큼한 냄새를 맡으면 소름이 돋고 기분이 나빠지는 사람이 되었다. 그따위 경험을 더 할 일은 최대한 없도록 노력하고 있으므로 이런 반응도 점점 옅어질테고, 그 증거로 나는 시트러스 향이 나는 그 세정제 두 개째를 변기에 달았다. (있으니까 쓰는 게 가장 크긴 하지만...) 그러나 아무리 내가 '괜찮아'지더라도, 그날 내가 구더기 봉지 옆에서 결국 잠들며 느꼈던 절망까지 없었던 일이 될 수는 없다. 숱하디 숱한 내 마음의 죽음 중 하나는 분명 그때 그곳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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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이후의 삶(요청이 있었음)







부산에서 귀환한 직후. (에어컨 뚜껑이... 안닫혀서... 열어둔채임...)







귀환 사흘차, 탁상 상황. 사실 물티슈나 면봉 같은 것은 노트북 뒤에 숨겼다.





쓰레기가 조금씩 늘고 있었지만 재활용은 비교적 금방 내놓았고, 약봉지 같은 생활쓰레기가 조금씩 쌓인다는 느낌에 가까웠다. 부산 내려가기 전에 한번 싹 치웠고, 올라와서는... 그동안 너무 엎드려 지냈다는 생각에 이제 좀 앉아서 생활하고 있다. 의사가 바뀌고 나서 본의 아니게 생활패턴이 엄청 바른생활 돼버려서 (의사 이 이상한 작자는 처방을 급격히 바꿔놓고도 정작 변화가 있었다니까 그럴리가 없다면서 헛소리 하고 있지만...) 이불 개고 앉아서 보통 그림을 그리거나.. 그림을 그리고 있다. 해야 할 것을 못하는 생활에서 아직 벗어나지는 못했지만, 하고 싶어도 기력이 없어서 못 하고 있었던 것들은 조금씩 해나가려 하고 있다. 세간의 시선으로 보면 '아무것도 못하고 무력하게 누워만 있는 우울증 환자'보다 더 한심할지도 모르겠는데, 당장 나에게는 어쨌든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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