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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 제정신으로 담담하게 써야 할지, 피곤에 쩔어서 내지르듯이 써야 할지는 생각을 좀 했지만 결론을 얻지는 못했다. 마침 비 때문에 낮에 잠들어버렸던지라 지금 굉장히 정신이 뚜렷하고, 하지만 밤중에 맥주를 홀짝이는 나는 아마 지금 어느 쪽도 아닐 것이다. 그래서 그냥 쓰기로 했다.
남의 시선을 느낀다는 것은 사실 굉장히 이상한 이야기지만, 확연히 느껴지는 순간들이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게 너무 싫었다. 이유가 너무 명확했기 때문이었다.
허벅지 안쪽이 일상적으로 쓸리지 않는 사람들은 아마 모르겠지만, 나같이 뚱뚱한 사람들에게는 아마 가랑이 쪽이 찢어져서 바지를 버리게 되는 일이 아주 낯설지는 않으리라 생각한다. 특히 나는 긴 청바지만 입어서 거의 항상 그렇게 바지를 버렸다. 하지만 쓰레기집에 사는 동안은 제때 바지를 버리고 새로 사는 일이 쉽지 않았다. 이럴 때 입으려고 헐렁한 추리닝 바지를 사두긴 했지만 아차 하는 순간에 쓰레기더미 아래로 사라져 버렸다. 꿰매보려고도 했지만 직물 특성상 허접한 손바느질로는 별 소용이 없었다. 그렇다고 덧대어 꿰맬 만한 천도 딱히 없었다. 일단 버릴 셔츠를 잘라서 덧대보긴 했는데 턱도 없었다.
아 이 얘기 쓰기 진짜 너무 싫다... 뭐랄까 내용이 그렇게 말하기 싫은가 하면 잘 모르겠는데 아무튼 쓰기 싫다 지금... 존나... 일단 방치할래... 나중에 마저 쓸래... 술 마시는 보람이 없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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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시 새벽에, 술을 마시면서 마저 쓰기로 한다. 낮에 맥주를 한 캔 하고 지금 두 캔 째인데, 오늘 속이 좀 안좋았다보니 술이 잘 들어가지가 않는다. 처음부터 안 따면 됐겠지만 그럴 수도 없었네. 아 뭐 이 글 쓰려고 딴 건 아닌데, 다른 게 안돼서 여기로 돌아왔다.
그러니까 가랑이 찢어진 바지 얘기까지만 했네. 뭐 바지 그깟거 좀 사면 되긴 하지만 사실 다른 옷에 비해 바지 사는 건 좀 큰일이다. 일단 나는 뭐든 다 인터넷으로 사는데, 실측사이즈를 잘 봐야하다보니 상당히 귀찮다. 어쨌든 바지가 한 벌밖에 없는 것도 아니니까 여러 벌을 돌려 입으면 되긴 했는데 하필 찢어진게 까만 스키니였고, 그 바지가 아니면 아무래도 맞지가 않는 옷들이 많았다. 취향상 기장이 넉넉한 상의를 많이 입어서 가만히 있으면 찢어진 부분이 잘 안보이긴 했다... 아니 그정도로 따질거면 빨리 새 바지를 샀어야지? 지당한 말씀이십니다... 그게 존나 안돼요 근데...
새 청바지는 그래도 그나마 좀 빨리 주문을 하긴 했던 것 같다. 근데 하필이면 다른 바지도 또 가랑이가 찢어졌다. 아마 두 벌을 동시에 사서 돌려입다보니 그렇게 된 것 같았다. 존나 청천벽력이었지만 뭐 어떻게 가랑이 잘 가려가면서 버티면 될 노릇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계단이나 뭐 그런 걸 오를때 티가 나기야 하겠지만 해봤자 뒷사람한테 보이는 게 빤쓰 정도일텐데, 그냥 내가 눈치 못 챈 척 하면 되지 뭐. 실제로 바지가 찢어진 걸 집에 와서야 알았던 때가 많았으니까, 나도 그런 사람인 것처럼 행세하면 될 일이었다. 그러니까 뒷사람한테 보이는게 "고작 빤쓰 정도"라면 말이다.
그 씨발 좆같은 빤쓰가.. 빤쓰가 없었다... 빨래를 안해서... (진짜 시발 이거 쓰는데 존나 온갖 생각 드네) 사실 집에 와서 옷을 벗는대로 세탁기에 넣으면 될 일이지만... 그걸 못했고... 그랬다... 어... 그랬다 정말... 빤쓰가 자꾸 사라지니까 계속 사긴 했는데 그래도 한계가 있었고... 나는 종종 가랑이가 허한 상태로 바지를 입곤 했다. 아무리 가랑이를 잘 닦아도 옷에 밴 오줌냄새가 훅 끼치는 순간들이 있었고, 그걸 막는답시고 보지에 돌돌 만 휴지를 끼우거나 바지에 생리대를 붙이기도 했지만 옷 구조상 위치가 안정적으로 유지되질 않았다. 생리를 할 때는 그래도 동네 잡화상에서 다급히 팬티를 사서 생리대만 갈아가며 며칠을 같은 팬티를 입곤 했다.
아니 뭐... 이렇게 써도 내가 매일매일 밖에 나다니는 사람은 아니었고 오히려 일주일의 절반도 어디 나가질 않았으니까 지금 돌이켜보면 이런 걸 신경써서 외출해야 했던 날이 그렇게까지 많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만 내가 외출을 한다면 그건 거의 항상 학교였고... 나는 셔틀버스를 타고 학교에 갔다. 버스 계단은 높고, 다리를 크게 벌리면 찢어진 가랑이 틈새가 보일 터였다. 그리고 나는 씨발 그 좆같은 팬티가 없었고, 그리고.. 뭐 그렇다. 항상 이어폰을 끼고 음량을 높여 주변의 소리를 차단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느껴졌다. 내 뒤에 서 있던 사람의 시선이. 말도 안 되는 광경을 봐 버린 경악이 담긴 시선이. 한순간에 싸해진 등 뒤의 공기가.
그렇게 버스에 탄 나는 항상 자리에 앉고 나면... 생각을 했다 그 뒷사람은 나를 뭐라고 생각했을까 하고. 아마도 노팬티로 다니면서 뒷사람한테 보지 보여주는 노출증 변태나 뭐 그런 걸로 생각하지 않았을까? 최소한 쓰레기집에 살면서 빨래를 안하는바람에 팬티도 안입고 무기력해서 새 바지도 제때 못 사는 바람에 그런 꼴로 다녔을 거라고 상상하진 않았을 것 같다. 누가 시발 그런 생각을 하겠냐... 어쩌면 "셔틀에서 노팬티녀 봤음"같은 글이 스랖에 올라갔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아닐 가능성이 높겠지만, 그때 내가 그런 상상에 존나 시달렸던 건 사실이다.
그놈의 찢어진 바지(존나 스폰지밥 같네요 ..) 시기가 며칠정도였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 때의 미칠듯한 수치심, 그렇게 수치스러우면서도 제대로 된 생활을 도저히 꾸릴 수 없었던 스스로에 대한 절망감이 뒤섞인... 그... 좆같은 이야기를... 어차피 이렇게 쓰지 않아도 평생 잊지 못하겠지만... 그래도 쓰기 시작한 것을 끝까지 썼다. 이런 쪽팔리는 이야기를 공개적으로 풀어내는 게 과연 내 안에만 있던 미칠듯한 수치심을 누그러뜨려줄까? 잘 모르겠다. 냉정하게 생각하면 좀 덜 부끄럽겠답시고 이런 수치의 기억을 글로 남기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행위니까.
그래도 존나... 고통스러워하면서... 무려 일주일이나 쓰다 말고 방치해 두고, 그걸 또 써야한다는 이상한 부담을 느끼면서 결국 다 써버렸다. 누군가의 위로가 되기 위해서도 아닌 것 같고, 동정을 받기 위해서는 진짜 아니다. 공감은.. 굳이 따지자면 조금 원할지도 모르겠지만 그게 주된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그냥... 이런... 말도 안 되는 감정을 느꼈던 것에 대해, 지금 생각해도 정신이 아찔해지는 시선을 내 가랑이에 새긴 날들에 대해 써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날 내가 얼마나 깨부숴졌는지 어떻게 해도 온전히 글쪼가리에 다 담을 수는 없겠지만, 아무튼 바깥에 나갈 때마다 마음이 죽고 죽고 죽었던 나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