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끔찍할 정도로 서사를 필요로 하는 나날이다. 일상으로 빚어지지 못하고 나동그라진 시간들이 발에 채인다. 이때쯤이면 남들보다 빛날 거라고 은연중에 넘겨짚던 때도 있었고, 25살이 끝나가는 이 겨울을 영영 보지 못할 거라고 믿고 싶었던 때도 있었다. 어느 쪽이 되었든, 혹은 어느 쪽도 아니었든, 드글거리며 드러누워 나를 수렁처럼 꾸역꾸역 집어삼키는 지금을 예상한 적은 없었다. 우스운 일이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않는 순간의 연속이 이어진 뒤에 느닷없는 광명이 찾아올 거라고 믿은 적 또한 없었는데.
무기력과 우울은 덕지덕지 뭉쳐서 자그마한 방바닥을 가득 채우고, 내 몸뚱이의 부피따위는 오래전에 아득히 뛰어넘어버렸다. 그 사이에 비집고 누워, 몸을 뒤척이면 비닐봉지나 맥주캔 따위가 구겨지는 소리에 신경이 쓰이지 않도록 무던히도 신경을 쓰고는 한다.
시간을 주워섬겨 생활로 빚어낼 수 없었던 나는 평생 몰랐어도 됐을 것들을 자꾸만 알아간다. 어딘가가 물리적으로 아프지 않아도 너무 우울하면 온몸에 힘이 전부 빠져버려서 손가락 하나 꼼짝할 수 없을 수도 있다거나, 일정 기간 이상 아무것도 먹지 않으면 몸에서 열이 난다는 것, 일주일의 절반은 눈 한번 제대로 못 붙이고 깨어 있다가 또 나머지 절반은 하루에 예닐곱 번 잠시 깨어났다가 30분 이내로 다시 잠이 들어버리는 동안 아무것도 되지 못한 시간들은 금방 지나가버린다는 것, 생각을 전환한 적조차 없는데도 종종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잊어버려 몇 시간을 고민해도 결국 실마리 하나 찾아내지 못하는 막막한 감각, 사흘을 물 한 모금 마시지 않아도 지긋지긋한 몸뚱아리는 악착같이 살아남는다든가, 그러고 나서 바로 술을 들이부어보려 해도 어차피 많이 들어가지조차 않는다는 것, 어느 날 내가 덜컥 죽어버린다 해도 발견되려면 아마 사나흘은 족히 걸릴 것이라는 사실이나, 내가 죽으면 슬퍼할 사람들에 대해 이미 놀라울 정도로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것, 오히려 슬퍼할 사람들보다는 내가 없으면 차질이 빚어질 곤란들에 대해서 실낱같은 책임감을 느낀다거나, 이 모든 생각을 혼자서 꾹 눌러담은 채로 남들에게 의례적으로 인사를 하고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며 웃어보일 수조차 있다는 것 따위를 말이다.
나에게 자해나 자살사고는 언제나 일상이었고, 그것들은 대체로 바닥에 쏟아진 레고 조각같은 내 인생을 울면서 맨발로 몇 시간씩 짓밟다가 결국 부서지지도 못하는 자신을 비웃으며 다시금 꾸역꾸역 쌓아올리기 위함이었다. 그래서 나는 자해나 자살사고를 앞두고는 어쩐지 좀 들뜬 상태가 되고는 할 수밖에 없었다. 우울에 내팽개쳐져 있다가 마지못해서라도 삶으로 다시 기어나오기 위해 나를 채찍질할 수 있는 건 언제나 나밖에 없었으니까. 물론 그 언제라도 나는 정말로 죽어버리는 것을 많게든 적게든 기대해 왔지만, 요컨대 그건 복권에 당첨되기를 바라는 것과 같은 일이었다. 안타깝게도 나는 죽을 수 있을 리가 없어서, 그 자리에서 한 번 죽은 후에 이어지는 지난한 시간을 다시 견뎌낼 각오를 해야만 했다. 그러므로 마침내 여기까지 오고 만 나는 도리어 죽을 수조차 없는 지경에 몰리고야 만 것이다.
당연히 정말 진심으로 죽으려고 한다면 나는 얼마든 죽을 수야 있을 것이다. 찌질하게 며칠 굶은 뒤 폭음을 하려고 하다가 도저히 술이 목구멍으로 넘어가질 않아 그만두는 짓이나, 털실을 겹겹이 얽어 매듭을 만들고 수건걸이에 매단 뒤 주저앉았다가 결국 견디지 못하고 다시 일어서는 것, 아스피린 한 통을 소주와 함께 집어삼키고 손목을 깔짝깔짝 그어대다가 끝내는 변기를 잡고 전부 게워내는 일이나, 레티놀이 든 종합비타민을 심 수알 꾸역꾸역 밀어넣었다가 며칠을 앓아눕는 정도로 나는 절대로 죽을 수 있을 리가 없다. 이런 애들 장난같은 짓보다 훨씬 확실하고 강력한 방법들은 이미 머릿속에 얼마든지 들어있지만, 우둔하고 겁쟁이인 나는 그저 불의의 사고라도 일어났으면 하는 공상이나 품은 채 횡단보도의 신호를 투철하게 지키며 에스컬레이터의 손잡이는 단단히 고쳐잡는다.
하지만 이제는 다시금 다잡을 나 자신의 지푸라기같은 희망이나 긍정 따위도 찾을 수가 없이, 서로 맞지 않는 삶의 조각들만 발치를 달각달각 굴러다니며 나를 손가락질할 뿐이라면 나는 새로운 시작을 위해 이 자리에서 한 번 죽는 것조차 차마 시도할 수 없는 것이다. 지금 죽지조차 못한다면 어쩌지? 어쩔 수 없이 나는 살아가야 할텐데, 그렇게까지 해야만 하는 건가? 여전히 나를 '웃도록' 만드는 것이야 세상에 한가득 있다곤 하지만, 솔직히 그것들이 다 어쨌다고? 인생이 전부 좆같은 와중에 가다 한번 피식 웃는 정도를 위해서 악착같이 살아야 할 필요가 정말로 있을까? 애초에 악착같이 살 수 있기는 한가? 그건 아닌데, 지금이야말로 정말로 죽어야 할 때인데. 그런데도 바보같이 죽지도 못하고 이렇게 늘어져만 있는 내가 지리멸렬하다. 죽을 의욕도 용기도 채 내지 못하고 있는 한심한 것, 이만큼이나 지났어도 결국 인간이 되지는 못한 덩어리.
하고 싶었던 말은 아직도 한참이나 쌓여 있지만, 여기까지 와서 나는 그 말을들 글자로 뱉어낼 의욕까지 또다시 잃고 말았다. 없어지고 싶다. 자퇴하고 폐쇄병동에 들어가고 싶다. 하지만 그럴 수도 없을 것이고, 나에게는 죽는 것 이외의 어떤 선택지도 없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존나 죽고싶다 씨발 이정도로 살기 싫으면 몸뚱이가 좀 알아서 셧다운돼야 하는거 아니냐...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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