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우울하다. 우리는 우울해서 종종 힘이 없고, 누워있는 것 외에는 어쩌지도 못할 무기력 상태에 빠진다. 어쩌면 우리는 SNS나 게임을 할 것이고, 대충 문화생활로 분류되는 것들을 하며 그나마 삶을 유지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거라곤 이것밖에 없다는 걸 우선 스스로부터 납득하려고 하지만, '놀고 먹는 우리'에 대한 시선을 두려워한다. 한편 우리는 우리의 가치를 찾는 것에 혈안이 되어, 어떤 책임들에 우리 스스로를 묶어두기도 한다. 우리는 종종 그것들이 '붕 떠있는' 우리를 붙잡아주리라 기대한다. 다만 조잡한 매듭이 풀린 책임은 종종 우리를 미끄러뜨리고, 우리는 스스로 맡은 책임도 다하지 못했다며 한층 우울해지곤 한다. 목표를 완수한다 한들, 우리에게 빛나는 새 세상이 펼쳐지지..
이걸 제정신으로 담담하게 써야 할지, 피곤에 쩔어서 내지르듯이 써야 할지는 생각을 좀 했지만 결론을 얻지는 못했다. 마침 비 때문에 낮에 잠들어버렸던지라 지금 굉장히 정신이 뚜렷하고, 하지만 밤중에 맥주를 홀짝이는 나는 아마 지금 어느 쪽도 아닐 것이다. 그래서 그냥 쓰기로 했다. 남의 시선을 느낀다는 것은 사실 굉장히 이상한 이야기지만, 확연히 느껴지는 순간들이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게 너무 싫었다. 이유가 너무 명확했기 때문이었다. 허벅지 안쪽이 일상적으로 쓸리지 않는 사람들은 아마 모르겠지만, 나같이 뚱뚱한 사람들에게는 아마 가랑이 쪽이 찢어져서 바지를 버리게 되는 일이 아주 낯설지는 않으리라 생각한다. 특히 나는 긴 청바지만 입어서 거의 항상 그렇게 바지를 버렸다. 하지만 쓰레기집에 사는 동안은..
동네 슈퍼에서 변기 세정제를 샀다. 플라스틱 용기에 들어있고 달아놓으면 물이 파래지는 걸 사려고 했는데 옥시밖에 없길래, 대신 비누처럼 생긴 걸 샀다. 변기 가장자리에 달려고 포장을 뜯자 시큼한 시트러스 향이 확 풍겼다. 조금 소름이 돋았다. 향수같은 데에 쓰이는 은은한 시트러스 향이 아니라 세정용 제품에 쓰이는 강렬한 냄새였다. 그날은 화장실에 갈 때마다 속이 조금 메슥거렸다. 무기력하게 누운 사람이 비교적 쉽게 단백질을 섭취할 수 있는 메뉴는 역시 치킨이다. 쓰레기집을 치울 엄두는 안 나도 쓰레기를 더하지는 않으려고 나름대로 신경을 썼기에 대체로 순살치킨을 먹는 경우가 많았지만, 가끔은 정말로 뼈가 있는 치킨이 먹고 싶을 때가 있었다. 특히 옛날통닭이 그랬다. 그렇게 먹고 내버려둔 닭뼈가 썩는 특유의..
바닥이라는 것은 없다. 살면서 경험한 감각 중 가장 낮게 추락한 적은 있겠지만 사실 언제든 그보다 나빠질 수 있다. 그렇게 떨어진 마음은 부서지는가? 유리나 도자기나 아무튼 와장창 깨지는 무언가처럼 산산조각나는가? 그리고 그걸 주워담아서 다시 이어붙이는가? 원래의 모양을 찾은 것 같지만 영원히 상처가 남는가? 나는 뭐 그런 낭만적인 얘기를 하고 싶지는 않다. 물론 나는 우울할때 존나 감상적이고, 평소에도 더럽게 많이 쓰는 불필요한 수사를 덕지덕지 퍼바른다. 우울함을 진정시켜서 전시하려는건지 아니면 과장시켜서 전시하려는건지는 모르겠다. 두가지를 동시에 하고싶은 것 같기도 하고 그때그때 다른 것도 같다. 아무튼 전시하고 싶다는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굳이 말해보고자 하는 것은 마음이 죽는 감각에 대한 얘기들..
胃液のせいで熱い。 何でも出来ちゃう気分は長くない。また沈んで、沈んで向う底はまだまだ見えもしな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