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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

우리를 위한 편지

Gazamee 2018. 9. 7. 18:52
우리는 우울하다.

우리는 우울해서 종종 힘이 없고, 누워있는 것 외에는 어쩌지도 못할 무기력 상태에 빠진다. 어쩌면 우리는 SNS나 게임을 할 것이고, 대충 문화생활로 분류되는 것들을 하며 그나마 삶을 유지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거라곤 이것밖에 없다는 걸 우선 스스로부터 납득하려고 하지만, '놀고 먹는 우리'에 대한 시선을 두려워한다.

한편 우리는 우리의 가치를 찾는 것에 혈안이 되어, 어떤 책임들에 우리 스스로를 묶어두기도 한다. 우리는 종종 그것들이 '붕 떠있는' 우리를 붙잡아주리라 기대한다. 다만 조잡한 매듭이 풀린 책임은 종종 우리를 미끄러뜨리고, 우리는 스스로 맡은 책임도 다하지 못했다며 한층 우울해지곤 한다. 목표를 완수한다 한들, 우리에게 빛나는 새 세상이 펼쳐지지도 않는다. 그보다는 왜 한 번 할 수 있었던 것을 다시 할 수 없는지에 대한 자괴감이 우리에게 더 선명히 새겨질 것이다.

우리는 우리로 호명되어 편안함을 느끼고 싶지만, 동시에 우리 안에서 뭉뚱그려지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 우리에 대한 저 위의 문장들이 우리에게 얼마나 편안했으며 또 얼마나 불편했는가. 나와 같은 심정을 가진 사람들을 우리로 호명하기는 쉽다. 우리 속에서도 펼쳐지는 천태만상을 보며 역시 내 처지는 나밖에 모른다고 다시 떨어지기도 쉽다. 쉽다는 것은 빈도에 대한 이야기이지, 감정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다. 오히려 나를 우리에 붙였다 도로 도려내는 과정은 매번 끔찍한 고통을 준다.

우리는 각자 다르다. 각자 다른 '나'들을 우리로 엮는 과정에서 우리는 오만 가지 생각을 한다. 인간의 삶이 반드시 무언가를 이루어내야만 가치를 증명받는 것이 아니라고 외치면서도 나의 무가치함을 근거로 죽음을 생각한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자신을 깎아내리는 것이 터무니없다고 생각하지만 누가 뭐라든 세상에서 가장 한심한 것은 나이다. 누구나 각자의 삶에서 힘든 시기가 있다고 얘기하면서도 내가 우울해하는 이 상황 자체가 단순한 태만이 아닐까 늘 불안하다. 혹은 우리 중 그러한 '태만'을 보이는 사람들에게 적의를 품기도 하고, 종종 나에게 되돌아오는 그 날선 감정에 다시금 침울해진다.

무기력하고 무가치한 내가 우리에게 할 수 있는 말은 언제나 한정된다. 어떤 위로를 하려다가도 나 따위의 말이 얼마나 쓸모 없을지 생각하며 삼킨다. 나도 못 내고 있는 힘을 내라고 생각 없이 격려할 수는 없다. 어떤 때는 지금의 내가 우울해하며 나뒹굴 수 있는 기반에 대한 부채감을 숨기고, 어떤 때는 나보다 평탄한 곳에서 우울하게 누울 여유에 대한 분노를 억누른다. 그리고 종종 아무런 위로의 말을 건네지 못한 나 자신은 그 전보다도 더한 쓰레기가 된다. 어쩌면 그런 과정 속에서 나는 내 주변의 사람들을 지금보다 더 잃어갈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모든 것은 나를 우리 속에서도 우리보다 못한 존재로 만들고, 그런 나의 말을 먼지쪼가리보다도 하찮게 한다.

그래서 내가 이 글을 쓰는 데에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린 것이다. 무슨 말을 해야할지, 아니 할 수나 있을지, 언제나 모르기 때문이다. 이 글의 제목은 원래 "우리를 위한 위로"였지만, 결국 나는 우리를 위로하는 데에 다시금 실패하고 제목을 고쳐썼다.

그래도 우리, 어쩌면 세상 모든 것이 고까운 우리, 어쩌면 모든 것이 내 잘못인 것 같아 괴로운 우리, 이 간극을 메우지 못해 끊임없이 고통받는 우리, 때때로 이가 갈리도록 증오스럽기까지 한 우리, 그러나 여전히 우리, 그리고 우리 안의 당신. 나에게 당신은 여전히 소중하고, 설령 당신과 내가 어떤 이유로 멀어지게 되더라도 당신은 나에게 계속 소중했던 사람으로 남을 것이다. 나도 가치를 인정하지 못하는 나 자신의 말이 당신에게 얼마나 큰 의미를 가질지도 모르겠고, 내가 당신을 소중히 여기는만큼 당신이 나를 소중히 생각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바로 지금, 이 말을 하는 단 한 순간만이라도 나는 그 모든 두려움을 잠시 접어두려고 한다.


나에게는 당신이 소중하다. 당신의 삶이 지금보다 훨씬 더 견딜만해지기를 늘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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