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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

정병일지 9일차

Gazamee 2016. 12. 16. 03:39

(렉사프로 및 브로마제팜 복용 후 쓰는중. 그리고 이전 글 고치기 귀찮아서 여기다 쓰는데 렉사프로 10->20이 아니라 5->10임)


9일차(12/15)


아침에 어떻게 일어났는지 잘 기억이 나지는 않는데, 아무튼 여유로운 시간에 일어났다. 늘 그랬듯이 누운 자리에서 뭉개다가 느긋하게 일어나서 씻었다. 작년까지만 해도 교회 어쩌구인 집주인이 무교인 세입자에게 손수 지옥불을 맛보게 해주기라도 하는건가 싶을 정도로 바닥도 뜨겁고 온수도 펑펑 나오고 그랬는데, 아무래도 살기가 팍팍해져서 그런지 올해 겨울은 좀 그런 느낌이 덜해서 아침에 샤워를 할 때 시간이 좀 오래 걸린다. 물이 갑자기 차가워져서 화들짝 놀라 샤워기를 몸에서 떼는 일이 자꾸 생긴다. 머리가 짧아져서 아끼는 시간이 많으니 결과적으로 전체 준비시간 자체는 얼추 비슷하거나 오히려 좀 짧아진 느낌도 들지만.


삼한사온이니 어쩌니 하지만 좀 괴악할 정도로 내가 출근하는 목요일에만 지독하게 추운 날씨에 대해서 불평을 하며 알바를 하러 갔다. 가서는 평소 하던 일들을 하였고, 거기에 추가로 교육 영상을 보았다. 의무적으로 봐야 해서 영 재미가 없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몇몇 부분은 대단히 재미가 있었다. 식품위생법 관련 부분이나 농산품 원산지 표시제에 대한 내용은 전공이 어떻고 저떻고 해서가 아니라 진짜로 그냥 재미가 있었다. 나는 원래 다 외울 필요라고는 전혀 없이 막연히 줄줄 흘러들어오는 잡학 관련 정보를 굉장히 좋아한다. 게다가 이런 기회가 아니면 살면서 또 언제 국산 족발과 칠레산 족발을 육안으로 구별하는 법에 대해서 배워 보겠는가. 중간에 담배를 피면서 매니저님에게 이런 얘기를 했더니 엄청 실용적인 내용이었네 하면서 본인도 놀랐다.


지난주에 너무 졸았던 게 미안해서 오늘은 커피믹스를 한 잔 타서 마셨고, 점심 때 매니저님이 없으니 밥 먹는 다른 무리에 자연스레 끼기도 뭔가 애매해서 편의점에서 샌드위치와 카페라떼를 사왔다. 씨유 헤이루 카페라떼를 사 왔는데 내 입맛에는 매일에서 나오는 카페라떼가 좀 더 편하게 넘어가는 느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편의점에 다녀올때는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을 이용했다. 인바디 측정 결과에서 다리 근력이 심히 부실했던 것이 조금 신경이 쓰여서, 걸을 만한 거리는 좀 걸어다녀야겠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사실 그 3층 좀 오르내리는게 얼마나 도움이 되겠냐 싶지만, 그래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나을 것 같았다. 날이 추워서 몸을 데우려고 편의점에서 가볍게 뛰어왔더니 숨이 찼다.


일하는 중간에 이름과 성까지 나와 완전히 같은 사람을 보았다. 의외로 현실에서 잘 보이지 않는 이름이라고 생각했던지라 기분이 묘했다.


알바는 다음주부터 화요일에도 나가기로 했다. 사실 건강검진이 아니었으면 이번주에도 나갈 수 있었을텐데 그건 좀 아쉽긴 하다.


지난주에 노라가 술약속을 펑크냈는데, 이번주에 술을 마시기 전에 영화 초대권이 생겼다며 같이 보러가자고 했다. 영화는 <위켄즈>였고, 상영 장소는 용산 CGV였다. 그래서 9호선 급행을 타고 노량진으로 가는데 사람이 진짜 많았다. 옛날에 2호선을 타고 1교시 통학을 하던 시절이 떠올랐다. 별 생각 없이 반대쪽 문 앞에 서 있다가 점점 사람이 꽉꽉 들어차는 바람에 내릴 수 있을지 심히 걱정이 되었다. "내릴게요!!"를 다시 외치고 싶지 않아서 다소 불안에 떨고 있었는데, 다행히도 1호선 환승역인 노량진에서 내리는 사람이 많아 나도 무사히 내릴 수 있었다.


퇴근 후 저녁을 못 먹고 바로 간 거라서 노라에게 지난주에 약속을 펑크낸 죄를 팝콘으로 갚으라고 했다. 노라는 작은 팝콘과 음료수를 샀다. 나는 팝콘만 먹었고 노라는 음료수만 마셨다. 나는 극장에서 음료를 마시면 중간부터 화장실이 가고 싶어져서 영화에 전혀 집중을 하지 못하는 타입이다. 영화 자체에 대한 평은 왓챠에 남겼으니 별로 더 보탤 말은 없고, 하여튼 귀여운 영화였다. 영화 끝나고는 순부랑 인사를 잠시 하려고 했는데, 이자식이 졸리다고 아싸리 튀어버렸다.


바깥에서 담배를 피웠다. 담배를 피는 아저씨들의 얘기가 웃겼는데, 대충 어떤 거였냐면 한 아저씨의 담뱃불이 거센 바람에 날리는 바람에 다른 아저씨가 자기 옷에 구멍나겠다고 한 소리를 했다. 그러자 담배를 피던 아저씨가 그게 다 담배피는 사람의 삶의 애환 아니겠냐고 했는데(?), 이에 다른 아저씨가 니가 담배피는거랑 내 옷에 구멍나는게 뭔 상관이냐고 정론을 펼치자 담배피던 아저씨는 원래 다 그런거라며 자기는 잠옷에도 담뱃불 때문에 구멍이 나있다고 했다(???). 오프라인 아무말 대잔치를 옆에서 보느라 나랑 노라는 계속 웃었다.


750A를 타고 관악구청 앞에 와서 술집에 가기로 했다. 원래 야동에 가려고 했는데 종강버프로 자리가 없어서 천희양꼬치 있는 길목까지 가서 고민하다가, 튀긴 안주는 속에 부대낄 것 같아서 말자싸롱 옆의 족발집에 갔다. 반족을 시켰는데 엄청 많이 나왔고 부추전까지 공짜로 부쳐주셨다. 족발집 괜찮은데 사람들이 하도 최희성에 많이 가서 그런지 가게가 휑해서 좀 안타까웠다. 둘이서 동아리 얘기를 이래저래 나누었고, 노라가 동아리에서 친목 모임을 하는 데 도움을 주고 싶다는 얘기를 했다. 지금 동아리를 굴리는 사람들은 전부 내향적 인간들이라 관계확장성 행사를 만드는 데에 대단한 피로감을 느끼고 있으므로,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답했다. 그 외에도 이런저런 잡담을, 주로 내 신상이나 노라가 그간 해온 일들에 관해서 나누었다. 중간에 말자싸롱에서 술을 마시던 노라 애인도 합류했다. 족발집 아주머니는 우리 말고 손님이 없는데다 시간이 늦어 피곤하신지 누워 계셨다. TV에서는 당뇨에 관한 프로그램이 나왔다. 건강에 대한 얘기를 이래저래 나누었다. 내일 치과에 갈 생각을 하니 마음이 갑갑했다.


약을 먹으면서 주량이 확 줄어들어서 솔직히 노라랑 술을 얼마나 마실 수 있을까 했는데, 둘(+뒤늦게 합류한 한명)이서 병맥 4병을 여유롭게 비웠다. 우울증 약 먹으면서 정신줄을 놓을 정도로 술을 마시려면 얼마나 마셔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이 살짝 들었다. 택시를 지지리 못잡는지라 노라에게 택시 좀 태워 보내 달라고 부탁을 했고, 다행히도 금방 택시를 잡아 녹두로 왔다. 위로 올라갔다가 차 돌리기 힘들어지면 민폐니까 늘 롯데리아 맞은편 정도에서 내리는데, 아저씨가 잘못해서 한 블럭을 더 갔다. 그냥 거기서 내렸다. 코인노래방에 들를까 생각을 안 한건 아니지만 그럴 기운은 없어 그냥 집으로 왔다. 오는 길에 비타민워터 한 병을 샀고 그걸로 약을 먹었다. 또 페이스북에 이 일지에 관해서 뭔가 감성 돋고 오그라듣는 글(올해만 유서를 두 번 썼다느니, 사랑하는 친구들에게 감사한다느니 하는..)을 써서 링크를 하려고 했는데, 친구의 친구에게까지 공개하는 설정을 모바일로 하려고 했다가 설정은 설정대로 안되고 내용은 내용대로 날려먹었다. 참 나답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냥 웃음조로 다시 대충 써서 링크를 달아놓았다. 내가 사는 꼴이 그렇게 궁금한 사람이 있다면 들어와서 볼 수 있을 정도의 배려는 해 두었다.


자리에 누워 약을 먹었고 그 상태에서 이 글을 쓰기 시작하였다. 쓰다가 그대로 잠이 들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잘 버텨서 끝까지 적을 수 있었다. 사실 좀 너무 잘 버티는 바람에, 지금부터 자려고 한다고 치면 도대체 언제 일어날 수 있을지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내일 스케일링 하러 가기 귀찮다... 그냥 뭐 좀 살지... 어차피 내가 뭐 다른 사람이랑 구강 내부를 이용한 교류를 할 일이 있을 것도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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