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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

방을 뛰쳐나갔다

Gazamee 2017. 7. 2. 01:37

갑자기 죽고 싶었다.


'나, 뭐, 왜'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왜? 뭐가 문제였을까. 어제부터의 기억을 되짚어 본다. 병원에 가서 지난주에 문득 죽고 싶었다는 얘기를 했고, 이유가 없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죽고 싶었지만 무기력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는 말도 했다. 그리고 약을 타 왔고, 영화를 한 편 보고 의외로 맛있었던 밥과 의외로 맛있었던 음료를 먹고 들어왔다. 트위터를 했고 게임도 했다. 수면제를 먹고도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아 <우주 끝을 찾아서>를 재생시켰다. 그리고는 곧 잠이 들었다. 늦잠을 잤고,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저녁 늦게야 일어나서 무기력하게 누워 있다가 문득 죽고 싶다는 생각에 집어삼켜졌다.


왜?

어젯밤에 들었던 무례한 사람의 이야기에 화가 나서? 요즘 내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기분 나쁜 사람이 있어서? 수면 패턴을 조절하지 못해 가기로 약속했던 일정에 가지 못해서? 비가 와서? 늘 그랬듯 종일 굶어서? 새삼 더러운 방이 짜증나서? 도덕성 전시를 한 자신에게 환멸이 나서? 멘션으로 대화하는 와중에 굳이 하지 말았어야 할 말을 한 것 같아서? 친구가 말을 툭 내뱉어서? 방금 읽은 만화가 슬퍼서? 혹은 이 모든 것 때문에? 죽은 프로이트 양반의 불알이나 좀 만져보면 어떻게든 설명은 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아무것도 납득이 되지는 않았다. 갑작스레 죽고 싶을 땐 일단 사람들이 있는 공간으로 나가라는 의사의 말을 떠올리며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고, 새로 사 온 리스테린을 뜯어 가글을 했다. 알싸한 감각이 입 속을 찔렀지만 곧 괜찮아졌다. 구취를 빨아들인 액체를 내뱉고 나와 수건으로 몸을 닦고, 덜덜 떨리는 손으로 배달 어플을 켜서 단골 야식집의 불닭과 맥주를 주문했다. 배달 예정 시간은 50분이 떴지만 아마 30분이면 배달이 올 터였다. 하지만 그 시간도 기다리기 어려웠다. 아무튼 내 방이라는 공간에 있는 것이 겁났다. 곧장 아무 옷이나 주워 입고 우산을 챙겨 나갔다.


특별히 스며들 만한 인파는 없었다. 어딘가에 섞여들고 싶지도 않았다. 어쨌든 그냥 방에서 나가고 싶었다. 건물 앞에 서서 담배를 한 대 태웠다. 다른 집을 찾아가는 배달 오토바이 한 대와, 귀가가 늦은 듯한 아저씨 한 명이 지나갔다. 서늘하고 눅눅한 공기는 나를 조금 안심시켰는지도 모르겠다. 우산을 접고 현관 처마 아래의 젖지 않은 공간에 앉았다. 기록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바일로 티스토리 로그인을 하려고 했더니 새 브라우저 인증을 하라고 했다. 했다. 그런데 글쓰기 버튼을 찾을 수가 없었다. 급한대로 방명록에 글쪼가리를 써제끼고 있는데 생각보다도 훨씬 빨리 배달이 왔다. 써 놓은 내용을 카톡으로 보내 저장했다. 배달을 받고서 보니 같이 시킨 술은 오지 않았고, 빼달라고 했던 치킨무가 들어 있었다. 전화를 걸어 아주 침착하고 밝은 목소리로 맥주가 빠졌다고 말했다. 금방 가져다주겠다고 했다. 왜 음식을 받은 다음 바로 말하지 않았는지를 생각하며 봉지를 풀어 치킨무를 꺼냈고, 버렸다. 그 자리에 앉아서 담배를 한 대 더 태우고 있자니 다시 배달원이 왔다. 배달원은 죄송하다고 했고 나는 감사하다고 했다. 방으로 들어와 술과 안주를 뜯었다. 지금은 먹고 있다.


이러지 않았던 적이 있었는지, 언제쯤 이렇게 살지 않아도 되는지에 대해 생각했다. 둘 다 모르겠다. 좀 더 어렸을 적엔 "이만하면 할만큼 했지 씨발놈들아?"라는 말을 남기고 죽는 상상을 했었고, 몇 번 유서를 쓸 때마다 그런 말이 나왔던 것도 같다. 이것도 지금은 잘 모르겠다. 지금의 나는 살이 부러져 잘 접히지 않는 내 우산과 비슷한 상태라는 생각을 했다. 아무튼 기록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기억이 방대한 편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리고 사실 하고 많은 것 중에서도 이런 일을 굳이 기억할 필요라고는 딱히 없겠지만, 그래도 손쉽게 잊기는 어쩐지 싫었다. 그래서 썼다. 진정이 된 것 같기도 하고 진정된 자신을 어딘가에 내보여 안심시키고 싶은 것도 같다. 사실 잘 모르겠다. 그래도 썼다. 누가 읽어주길 바라는지도 모르는 채로 그냥 썼다. 그게 전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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