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해를 했지만 역시나 죽을 만큼은 아니었다. 내일은 현실로 돌아가보자.
깜짝 놀랄 정도로 무료하다고 느낀다. 사실 해야만 하는 일들은 많지만 그것을 차일피일 미루는 사이의 하루하루가 너무나 길다. 사람을 만나고 싶지만 돈이 절망적으로 없다. 이미 부모 등골 빨아먹고 사는데 이런 일로 집에 또 손을 벌릴 수도 없으니. 자기소개나 면접 따위를 거칠 필요 없이 그냥 무언가를 대뜸 명령받고 싶다. 한편 조금씩 외로워하고 있다. 내게 기대어 잠드는 작은 체온을 느끼고 나니 나는 생각보다 혼자 있지 못하는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저 누군가를 가만히 껴안고 싶다는 생각으로는 다 채워지지 않는 시간들이 지리멸렬하게 지나간다.
말도 안 될 정도로 건강하게(?) 흘러갔다. 반년짜리 공부를 1주일만에 했고(*반년동안 했어야 할 것을 고작 1주일만에 벼락치기했다는 말임) 월요일을 제외하면 매일매일 나다녔다. 무려 ~심신 건강한 사람을 만나고 싶은 사람~과 만나서 각자가 할 일을 했고, 친구 논문도 봐 주고, 할일 모임에서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과 사교성 좋은 대화를 이끌어나가고, 아무튼 뭐 파워풀한 조증 기간을 보냈다. 일단 누군가 사람에게 화를 막 내지 않았다는 것이 크게 다행이다. 시험이 끝나면 뻗어버리려나 했는데 지금은 또 다른 친구 만나러 원정 나왔음... 다음주도 일정 빡빡하게 차있고 인간들 만나느라 집에 내려가는걸 미뤘을 정도다. 장래에 대해서 생각도 했다. 진짜 미쳤나봐. 아니 미친거 맞지만요. 이대로만 살았으면 좋겠다...
공부를 하기 싫어서 그간 미루던 청소의 마무리를 했다. 친구들이 좀 놀러오면 좋겠는데 하도 망한 동네라 그게 참 어렵다. 당장 인근에 사는 친구 자체가 없다. 전부 버스 타고 나가야 있지... 휴 망한 동네. 새 의사는 생활공간의 우울한 사람들이 나아지는 신호이자 마음의 정리가 된다고 했다. 좀 사이비 어쩌구같다는 생각을 했지만 확실히 개운해졌다. 물론 공부를 너무 하기 싫어서 약간 뽕맞은듯이 해치워버린 감이 있지만 뭐 어때. 이 작고 지리멸렬한 삶 속에서 무언가 하나라도 깨끗하면, 하나라도 잘 되면 좋을 일이다. (바닥용 매트리스 사고싶다... 이불도 미묘한 두께의 극세사 한채 뿐이야... 빨래건조대도 겨울옷들을 너무 걸면 금방 와장창이고...) + 요즘 기분이 많이 나빠지진 않는데(종종 외로워지는 것..
거울은 끔찍하다. 거의 1년을 살아가는데도 여전히 "새 방"이라고 부르게 되는 나의 작은 방에는 원치 않는 거울들이 설치되어 있고, 그저 생활하는 것만으로도 자꾸만 나의 몸이 어떻게 비치는지를 곱씹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무척 고통스러운 일이다. 보통 집에서 변변한 옷을 걸치고 있지 않은지라 더욱 그렇기도 하다. 어차피 시야에 들어온 김에 거울을 들여다본다. 덥수룩한 눈썹. 살덩이 눈꺼풀에 덮인 멍한 눈은 도수 높은 안경 뒤에서 조그맣게 쪼그라들어 있다. 있지도 않은 콧대를 지나면 가장자리가 시뻘건 콧볼이 널찍이 벌어져 있다. 툭 튀어나온 두툼한 입술 위의 인중에는 종종 깎아주지 않으면 도드라지는 털들이 있고, 아래턱에도 종종 굵고 진한 털이 몇 가락 자라나서 뽑아 주어야 한다. ("생물학적 여자는 절..